무협/SF

천상(天上)의 향기 - 4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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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天上)의 향기 41(십이사(十二死)의 만남)-4




“잠깐만........조금 전부터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어요. 지금까지 우리에게 말한 정보들은 모두 어디서 얻은 거죠.”




곽지향이 아군에게 질문을 했다. 곽지향의 질문에 궁아라가 아군 대신 대답했다.




“그건 제가 답변하죠. 조금 전에 제가 북해빙궁 출신이라고 소개했죠. 저는 북해빙궁에서는 궁주님을 보필하는 사군자(四君子)의 신분을 가지고 있습니다.........천상루라고 다들 아실 겁니다. 천상루는 중원 최고의 기루로 중원전역에 지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상루의 주인은 북해빙궁입니다. 저는 천상루을 이용해서 많은 정보를 알아낸 겁니다. 참고적으로 몇 가지 더 말씀드리죠. 배화교는 50년 전 은하대전의 패배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시 흑독애, 포달랍궁, 북해빙궁과 힘을 합쳐 중원 무림을 정복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잠마동을 만들고 우릴 중원에 파견해 중원 무림을 혼란에 빠트리려고 하는 것도 중원 무림을 정복하기 위한 계획의 일환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상대해야 할 적은 배화교뿐만 아니라 포달랍궁, 흑독애 그리고 제가 속한 북해빙궁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허~ 배화교 하나도 벅찬데........포달랍궁에 흑독애, 거기에 북해빙궁까지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야.”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죽일 놈들도 많아지잖아. 어차피 죽을 목숨 신나게 굿판이나 벌리고 죽으면 그만 아니야.”


“무식한 새끼~ 좋기도 하겠다. 아주 신이 났구나.”


“그래 나 무식하다. 사람 잡은 백정이다. 왜 기분 나쁘냐.”


“그만하자.........너하고 이야기하면 나까지 무식해 진다. 자~ 이제는 다들 조용하고 일사인 아군의 이야기나 듣자.”




오랜만에 만난 도치와 악무룡이 티격티격 입씨름을 하더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곽지향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궁아라님.........당신도 북해빙궁 출신 아닌가요. 그럼 당신도 배화교와 한패라는 말이잖아요.”


“곽지향님의 말씀이 맞아요. 전 북해빙궁 출신이죠. 하지만 저는 빙궁 대신 아군과 여러분을 선택하겠습니다. 빙궁의 사군자가 아니라 십이사의 칠사로 남겠다는 말입니다.”


“빙궁을 배신하는 한이 있어도 우리와 함께하겠다는 말이군요. 좋아요. 당신을 믿겠습니다. 또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제가 천마마련 출신이란 걸 어떻게 아셨죠. 천마마련에서도 제가 잠마동에 잠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요.”


“그건 저보다 일사에게 들어보세요. 아군~ 이 문제는 아군이 대답해.”




궁아라의 말에 아군이 머리를 긁적거린다. 수혜 앞에서 초벽하와의 일을 말하기 곤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수혜도 알게 될 것이다. 어차피 알려진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솔직한 편이 좋다.




“벽하에게 들었어요.”


“벽하라면 초벽하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내가 알기로 초벽하님은 천마마련을 안 계세요. 어디서 초벽하님을 만나신 거죠.”


“천마마련에 있는 초하벽이 초벽하예요. 초벽하가 오빠를 대신해서 남장을 하고 있는 거죠.”


“뭐요.......서........설마.........”


“일사의 말은 사실입니다. 벽하는 일사인 아군의 여자가 되었습니다. 벽하 뿐만 아니죠. 사사천교의 사봉(麝鳳) 하후소하.......그리고 나도 아군의 여자가 되었죠.”




궁아라의 갑작스러운 말에 질문을 했던 곽지향, 아군의 옆에 있던 수혜 그리고 다른 십이사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다들 궁아라의 말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아군은 얼굴을 붉힌 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수혜였다. 수혜는 아군을 멍한 눈길로 바라본다. 어떻게........어떻게 아군이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를...........말도 안 된다. 자신은 아군에게 순결까지 받쳤던 여인이다. 아무리 자신과 떨어져 있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를 품을 수 있단 말인가? 아군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오직 자신만 바라보던 사람이다. 그 짧은 기간에 아군이 변한 것일까? 도대체 아군에게 무슨 일이 이었을까? 궁아라의 말을 믿을 수 없다. 아군에게 직접 들어야겠다. 




궁아라는 아군과 수혜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궁아라는 수혜가 싫다. 아군이 수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질투라고 해도 좋다. 수혜가 아군을 보자마자 품에 안기는 것을 보고 궁아라는 비수로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맛보았다. 수혜는 다른 여자와는 틀리다. 아군의 첫사랑이며 지금도 죽도록 사랑하는 여자다. 지금도 아군의 옆자리에는 수혜가 앉아있다. 지금까지 아군의 옆자리는 자신의 차지였다. 그런데 수혜는 나타나자마자 자신을 밀어내고 아군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하하하~ 대단하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아군하게 재주가 있는지 몰랐군. 아무튼 축하한다. 그런데 초하벽가 누구냐.”




악무룡이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악무룡도 아군과 수혜의 관계를 알고 있다. 아군은 그 지옥 같은 잠마동에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수혜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했던 남자다. 그런 아군이 다른 여자를 관계를 가졌다면 피치 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다. 지금은 십이사들의 장래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될 자리다.




“초벽하님은 천마마련의 소공녀님이세요.........칠사님! 당신이 북해빙궁보다 십이사를 더 생각하는 것도 일사님 때문이군요. 이제야 조금 이해가 돼요. 좋아요. 저도 여러분을 믿겠어요. 저도 천마마련보다는 십이사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 의문사항 있는 분은 질문하세요.”




궁아라는 아군과 수혜를 보고 있다가 눈을 돌려버린다. 수혜의 얼굴은 탁탁하게 굳어 있었고, 아군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대충 결론이 난 것 같군. 장기라는 친구만 빼고는 모두 일사와 같이 하기로 결정한거죠. 자~ 이제 말씀해 보세요. 일사와 칠사는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죠. 우리 모두는 마령단에 중독된 상태예요. 마령단이 없으면 한달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요.”


“그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죠. 그동안 저희들이 알아본 결과 마령단의 독을 치료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방법이 있단 말입니까? 그게 뭐죠.”


“첫 번째로 설화련이라는 전설의 영약을 구하는 방법입니다. 설화련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전설의 영약입니다. 두 번째도 역시 영약을 찾는 방법인데..........만년삼황이나 공천석유 같은 영약과 삼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은 일사가 수라기와 수라마령신공을 극성으로 익혀 극마(克魔)의 단계에 접어들면 일사의 힘으로 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방법은 현재 상태로써는 실현 불가능한 방법들입니다. 대신 일사와 저는 대안을 찾았습니다.”




궁아라는 품속에서 다정마의가 제조한 약이 들어있는 상자를 꺼냈다.




“이 상자에는 약이 들어있습니다. 바로 마령단의 독기가 더 이상 펴지지 않도록 하는 약입니다.”




궁아라는 다독마의가 제조한 약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약상자를 보면 반신반의하는 표정들이다.




“약은 제가 직접 시험해 봤어요. 저는 몇 칠전에 마령단의 독이 발작하자 마령단 대신 이 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멀쩡한 상태로 살아있습니다.”




궁아라는 품속에서 마령단을 꺼냈다. 얼마 전에 자신이 먹어야 할 마령단이다.




“마령단을 증거로 보여 드리죠...........하지만 이약은 해독제가 아닙니다. 마령단의 독을 다른 독으로 억누르는 약입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있습니다. 먼저 복용할 때 엄청난 고통을 견디셔야 합니다. 몸속에서 독과 독이 충돌하며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죠. 두 번째는 혹시라도 몸속에 쌓인 독의 균형이 깨지는 날에는 죽음을 면치 못하다는 겁니다.”


“당신 설명대로라면 그 약을 먹으면 최소한 마령단의 족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더 이상 마령단 때문에 잠마동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그래........계속해서 마령단을 먹기 보다는 그 약을 먹는 편이 났겠어. 그리고 우릴 이렇게 만든 그 잡놈의 새끼들을 때려잡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


“마령단 보다는 낮겠지. 나도 찬성이야. 그런데 잠마동주를 어떻게 때려잡겠다는 거지. 잠마동주는 개인이 아니야. 배화교 자체가 잠마동주야. 거기에 북해빙궁, 포달랍궁, 흑독애........이들은 모두 세외거대 방파들이야.........우리만의 힘으로 이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이들을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거지...........일사..........당신이 대답해 봐~”




이막수가 아군에게 질문을 했다. 사실 아군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아군도 그냥 잠마동주를 잡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지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아군이 입을 다물고 있자 한쪽에서 듣고만 있던 마수가 입을 열었다.




“어렵게 생각할거 없어요.......어차피 우리가 가진 힘이라고 해야 여기 모인 분들의 개개인의 능력이 전부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배화교가 황**면 우린 모기정도 일겁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물어뜯어도 배화교는 약간 간지러운 정도겠죠. 하지만.........황소도 모기에게 잘못 물리면 죽습니다.”


“당신은 좋은 계획이라도 있나요.”


“계획이랄 것도 없어요. 단순합니다. 배화교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우릴 키웠고 우리들을 이용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 음모가 무언지는 몰라요.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아요.........조금 전에 무림맹이 배화교에게 장악되었다고 했죠. 지금까지 우리들이 죽인 사람들이 바꿔치기 당했다고 했죠. 우리는 먼저 우리들이 죽인 사람들을 다시 한번 죽여 버리는 겁니다. 배화교가 꾸미고 있는 음모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거죠.”


“당신 말은 배화교가 자신들의 사람으로 바꿔치기한 사람들을 다시 죽이지는 말인가요.”


“맞아요. 쉽게 말하면 무림맹과 한판 붙자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할말은 아니지만..........우리가 찾아가지 않아도 그들이 우릴 찾아올 겁니다. 그들은 우릴 쉽게 포기하진 않을 거란 이야기죠.”




아군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수님의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저도 마수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배화교는 우리들이 없어진걸 알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무슨 반응이 있겠죠. 일단 우리들이 모두 모였으니 이곳에서 배화교의 반응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한번 시험은 해봤지만 우리가 준비한 약이 모든 분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장담하지는 못해요. 다른 분들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오늘은 아무리 떨어봐야 답이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모이고 서로의 뜻을 확인한 것으로 만족하고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합시다.”


“그래요. 오늘 잠마동주와 마령단의 비밀에 대해 알았으니..........각자 배화교를 상대할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고........다시 회의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어때요.”


“좋아........그럼 회의는 끝난 거지........자자~ 한잔씩 합니다.”




도치가 먼저 술병을 들고 사람들에게 술을 따라주기 시작했다. 




“아~ 반갑다.........아군도 한잔 받아.”




아군은 도치가 내미는 잔을 받았다. 도치는 수혜에게도 술을 따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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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 총관의 집무실에 혁린영과 마양이 심각한 얼굴로 앉아있었다. 그들은 아침에 시안으로부터 십이사에 대해보고 받았다.




“십이사 모두가 개봉에 있다는 보고야..........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어떻게 한곳에 모일 수 있는 거야.”


“우리들은 그동안 십이사를 철저한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습니다. 십이사 중에 누군가 실수를 해도 다른 십이사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 거죠. 그런데 중원 곳곳에 흩어져 있던 그들이 한곳에 모였다. 이건 십이사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겁니다. 아무래도 암중에서 십이사를 조정하려는 놈이 있는 모양입니다. 총관님은 집히는 놈이 없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놈들을 어떡해하면 좋지.”


“그놈들은 마령단에 중독된 놈들입니다. 일단 십이사들에게 경고를 한번 하세요. 우리들이 너희들을 감시하고 있다. 당장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지 않으면 마령단을 주지 않겠다고 하세요. 그놈들도 마령단이 발작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으니 감히 우리 뜻을 거역하진 못할 겁니다.”


“마령단의 독이 발작할 때까지 아직 보름이나 남았어. 보름동안 그놈들을 그대로 두고 보고 있으란 말이야.”


“이번 사안은 우리가 결정할 사안이 아닙니다. 먼저 본교에 사실대로 보고하세요. 그리고 본교에서 연락이 오는 동안 우리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 대해 조사해야 합니다. 분명 십이사의 뒤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밝혀야 합니다.”


“십이사들에 대한 것은 본교에서도 철저한 비밀이야. 그런데 누가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거지.”


“이렇게 하시죠. 총관님은 먼저 본교에 보고부터 하세요. 그리고 시안의 정보망을 총 동원해서 십이사 개개인에 대해 다시 한번 조사해 보세요. 누군가 십이사를 도와주었다면 십이사와 중에 그들과 관련된 사람이 있을 겁니다. 저는 십이사가 끝내 우리의 경고를 무시할 때를 가정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무림맹이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혁린영은 시안의 총 동원해서 십이사 개개인의 과거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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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궁아라는 점소이를 불려 십이사의 방을 빌렸다. 십이사 중에 술에 취해 먼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있고, 지금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군도 아직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도치와 악무룡이 계속해서 술을 권했기 때문이다.




“아군.........잠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지금까지 말없이 앉아있던 수혜가 아군의 팔을 잡고 일어났다. 아군도 수혜의 팔에 이끌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다녀올게요.”


“킥킥킥~! 그래 그만 일어나라. 우리가 눈치도 없이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지. 오랜만에 만났는데 둘이 할말이 많겠지...........대신 여기 있는 제수씨는 조금 있다가 보낼게. 남자 놈들만 있으니 심심해서 말이야. 그래도 돼지”


“그렇게 하세요. 그럼 먼저 일어납니다.”




아군은 수혜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궁아라는 밖으로 나가는 아군과 수혜를 바라보았다. 




“둘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말이 많을 겁니다. 자~ 한잔 받으세요.”




악무룡은 궁아라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궁아라는 속이 타는지 술을 단숨에 마셔버린다.




수혜와 아군은 객점 후원에 있는 정원으로 나갔다. 쌀쌀한 겨울이라 밤공기가 차가다. 하지만 술을 마신 아군이나 수혜는 춥다는 느낌이 없다. 수혜는 정원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 은하수와 밝게 빛나는 달이 보인다. 아군은 하늘을 바라보는 수혜를 말없이 지켜보았다. 변했다. 변해도 많이 변했다.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한 몽롱한 눈빛.......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요기(妖氣)가 흐르는 얼굴........잘록한 허리........풍만한 가슴.......빵빵한 엉덩이.......키도 많이 켰다. 수혜는 보기만 해도 남자들에게 성욕을 불려 일으키게 하는 요사(妖邪)한 아름다움을 풍기는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아군........궁아라라는 여인이 했던 말...........사실이야. 정말 그녀가 아군과.........그런 거야.”




수혜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조용하고 힘없는 목소리다. 그런데 수혜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가슴이 뛰다. 목소리에서조차 요기가 흐르는 것이다. 




“사실은............휴~ 변명하진 않겠습니다. 사실입니다. 궁아라 누님과 천마마련의 초벽하, 사사천교의 하후소하와 연(緣)을 맺었습니다.”




아군은 마음이 복잡했다. 하후소하와 궁아라는 음약되어 연을 맺게 되었고, 초벽하는 수라기의 마성이 폭발하여 자신이 강제로 범한 여인이다. 그녀들과 연을 맺은 것은 자신의 의지보다는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그리 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은 그녀들과 연을 맺었고, 자신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기로 맹세했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그녀들은 자신의 여인들이며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여인들이다. 지금도 수혜에 대한 마음에는 변화가 없다. 수혜는 자신이 모시는 아가씨며 평생 그녀의 겉을 지켜주고 싶다. 




“연(緣)?..........말을 어렵게 하네.........옛날에는.......아니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없지. 아군은 이제 옛날처럼 날 모시는 사람이 아니잖아..........아군에게 좋은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야. 축하해.”


“아가씨........전 변하지 않았어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가씨를 생각하는 마음은 똑같습니다. 저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아가씨를 생각하는 마음이 변한 것은 아닙니다.”


“아군 나쁜 사람이구나. 그러면 안돼. 그녀들을 아끼고 사랑해 줘야지. 그게 도리야.”


“물론 그녀들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저에게 특별한 사람입니다. 아가씨는 제가 살아가는 이유였고, 저의 전부였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아가씨는 아군의 전부에요.”


“...........고마워~ 아군의 마음은 소중하게 간직할게.........이제 됐어. 아군이 예전의 아군이 아니듯이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야. 이제 아군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아가씨........제가 다른 여자를 만났기 때문에 이러시는 입니까? 왜 제 마음을 몰라주세요. 전변하지 않았어요. 옛날의 아군 그대로란 말입니다.”


“그래?...........그럼 이렇게 말할까? 내가 변했어. 이젠 아군이 싫어졌어. 그러니까 아군도 나 같은 여자는 잊어버리고 아군이 선택한 여인들에게 충실했으면 좋겠어.........가야겠다.......춥다.”




수혜가 아군을 두고 돌아선다. 아군은 수혜의 팔을 잡았다. 수혜가 걸음을 멈춘다.




“방금 그 말씀........진정입니까?”


“진정이야........그만 놔줄래. 아파다~”




아군은 수혜를 돌려 세워 자신을 보게 했다. 수혜는 힘없는 눈빛으로 아군을 올려다본다.




“좋아요. 이건 알아두세요. 아가씨가 아무런 절 멀리 하셔도 전 아가씨 겉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마 세가의 원수를 잊지는 않았겠죠. 우리가 왜 무림에 나왔죠. 아가씨와 저는 세가의 원수를 갚고자 무림에 나왔어요.”


“세가의 원수는 내가 갚아. 아군은 신경 쓰지 마.”


“세가의 원수가 누군지 아세요. 바로 배화교에요. 배화교의 흑풍대가 세가를 멸문시킨 겁니다.......아가씨 혼자 배화교를 상대할 수 있어요. 이래도 제가 필요 없어요.”


“바.........방금 뭐라고 했지. 세가를 멸문시킨 놈들이 배화교라고 했어?”


“예~ 배화교가 세가의 원수들입니다.”


“그............그걸 어떻게 알았지.”


“초벽하에게 들었어요. 천마마련에서는 오래 전부터 배화교에 대해 조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배화교는 잠마동을 만들기 전에 자신들인 거느린 흑풍대로 무림의 약소문파를 멸문시켰다고 합니다. 그중 하나가 벽궁세가였습니다.”


“초벽하!............그래........초벽하에게 들었단 말이지.........고마워~ 하지만..........아군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어. 배화교는 내손으로 처리할거야.”




수혜는 아군의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돌아선다. 아군은 수혜를 잡지 못했다. 수혜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왜 화가 났을까? 자신에게 여자가 생겼기 때문일까? 그게 아가씨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혹시 아가씨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화가 난 것일까? 혹시 그런 것이라면 자신은 어떻게 하면 좋은가? 아가씨를 위해 다른 여자를 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머리가 복잡하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가씨를 찾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지 않았는데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 십이사의 앞날도 걱정되지만 앞으로 아가씨를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수혜는 복받치는 감정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아군에게 여자가 생겼다. 그것도 자신과는 비교도 안돼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여인들이다. 화가 난다. 미칠 것만 같다. 죽도라 자신만 쫓아다니던 아군이다. 어려서부터 자신만 바라보던 아군이다. 못생기고 멍청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던 했던 놈이다. 그러던 놈이 단 몇 달 사이에 다른 여자를 만났다........배신.......이건 배신이다. 아군에게 순결을 주었던 자신이 바보였다. 아군을 그리워하던 자신이 바보였다. 나쁜 놈이다. 뻔뻔한 놈이다. 죽일 놈이다. 어떻게 그놈이 자신을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수혜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침상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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