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노리로리 - 5부

본문

또다시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신촌 바닥에 나왔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안 오빠가 밥을 사준다는 것이다.


혼자 먹는 밥 지겨웠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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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업 중,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다가 지난 일요일 생각이 났다. 이안 오빠.


…오빠…아저씨? 오빠.


나이를 생각하면 아저씨라고 해야 될 것 같기도 한데 좀 안 어울린다. 어려 보이는데.


아가씨를 아줌마라고 하면 안되잖아.




오빠건 아저씨건, 그 사람은 나한테 굉장히 특이한 느낌을 준다.


내가 만나는 아빠나 선생님들처럼 어른도 아닌데, 또래 애들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성숙한 남자의 느낌인데, 이따금씩 귀여운 데가 있어서 재미있다.


해사한 얼굴도, 괜히 딱딱한 성격도.


그리고 뭐랄까, 뭔가 있을 것 같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데가 있다.


물론, 함께 있으면 뭔가 분위기가… 굉장히 따뜻하다.


…근데 가만있자. 스물아홉이믄 울 학교 몇몇 선생님들 나이보다 많자나…




눈 앞의 수학 선생님은 소문에 의하면 분명 방년 스물일곱.


오빠보다 두 살이나 어린데 완전 아저씨잖어... 


오늘도 텁수룩한 수염을 달고 뭔가 알 수 없는 문자들을 칠판에 쓰고 있다.




난 최면에 걸리기 전에 치마 위에 가만히 핸폰을 올려놓고 폴더를 연다.


같이 영화 본 다음부터 나는 심심할 때마다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지금모해?:)))


((나지금수학시간인데짱나주께쏘T0T))




언제나 오빠한테서 오는 문자는 간단하고 재미없다.




((공부한다))


((전화빨랑끄고수업들어라))




피이.


들으면 졸고, 졸다 걸림 더 괴로운걸. 


애꿎은 머리칼만 잡아당기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더 온다.




((졸지마))




…해햇. 어떻게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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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폰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그 때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좀 딱딱하긴 해도, 그가 문자를 씹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오늘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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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나밥사져♪ㅎㅎ))


…((너돈많잖아))




뭐야 이거.


… 그래^^울이뿐노리사줘야지… 이런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나는 분노의 문자를 날려보냈다.




((머야사진뜨는거보구시퍼-ㅠ-+))




… 문자 보낸지 10분. 답장이 안 온다…


앙, 괜한 짓을 했나 봐…




난 잠시 식탁 위에 엎드려 팔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밥이나 꺼내 먹어야지. 




(딩동댕동~) 




여느 때보다 훨 감미로운 문자 멜로디~




((알았어신촌으로와라))




엥 왠일이래. 역시 협박에 약한 건가… 소심하긴.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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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약속장소인 신촌역 입구 맥도널드 앞까지 왔다.


지난 주 토요일엔 지하 버거킹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또 패스트푸드점이네.


이잉,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헉, 너 뭐냐?”




언제 왔는지 그가 옆에 서 있다. 약간 놀란 표정이다.




“아, 오빠 안녕~ 근데 머?”


“아니, 너 옷 말야.”


“응? 아아, 교복? 이뿌지?”




내가 C여고로 배정 받은 다음 느꼈던 유일한 기쁨은 이 교복이었다.


남색 블레이저에 흰 블라우스, 주름진 체크무늬 치마.


여느 여고생 교복과 마찬가지인 흔한 스타일이지만 색상이나 모양이 촌스럽지 않고 깔끔해 보여 좋았다. 


난 다소곳이 일어나서 살짝 반 바퀴쯤 돌아 보였다.




(팔랑~)




“해햇, 이쁘면 이쁘다고 말해주세요.”


“너 토요일 저녁까지 교복입고 뭐하는 짓이냐?”


“뭐하긴. 입을 수도 있지. 이쁘냐니깐…?”


“휴우… 역시 고딩이군.”


“…어, 무슨 뜻이야??!”


“알아서 생각해라.”




왠지 기분 나쁘다. 드라이크리닝까지 해서 입고 왔구만.


교복 입고 온 게 그렇게 얼굴 붉히면서 화 낼 정도로 짜증나나. 




“교복 입고 와서 싫어?”


“뭐 상관없지만… 좀 그렇다.”


“…??? 왜? 머가?”


“교복 입고 온 애 델구 어딜 다니겠냐.”


“밥 먹으러 가는데 뭐가 어때서.”


“아, 그런가.”




잘못 말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을 미묘하게 찡그린다. 




“아니, 이상하잖아. 그게 좀…”


“…좀?”


“원조교제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푸핫!! ”




와, 장난 아니다. 난처한 얼굴로 저렇게 말하다니.


이 아저씨 오늘 나 웃기려고 작정했나.




“했잖아. 원조교제에~.”


“…야,야.”


“이러면 더 그래 보일까?”




가만히 그의 한쪽 팔을 끌어다가 안았다. 눈을 지그시 뜨고…


섹시하게~ ㅎㅎ


…그가 표정을 바로 하고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쉰다.




“치워라.”


“왜 그래, 속으론 좋으면서.”


“3초 내로 떨어져라. 꼬맹아.”


“우아, 또 꼬맹이래~!!”




……


야호~ 특대 스파게티가 나왔다.




“그나저나…ㅋㅋㅋ 아까 사진 올린단 말이 무서웠나 봐? 밥 사주구.”


“야, 설마 내가 그런 협박 무서워서 이러구 있겠냐?”




아까도 원조교제로 보일까봐 걱정했으면서~ 


전혀 설득력이 없사옵니다, 이안 오라버니.




“…원래 선생님하고 식사하기로 되어 있던 게 취소되었을 뿐이야.”


“흐음…”


“그리고 후배한테 거절당하고…”


“에, 뭐야. 나 3순위야?!”


“그러니까 밥 사주잖냐.”


“치잇.”




난 토라진 표정을 지었으나 그는 보지도 않고 스파게티를 덜기 시작한다.




“근데 너 학교 끝나고 지금까지 집에 안 갔다 온 거야?”


“응…?”




사실 잠시 들르긴 했지만 그게 그거다.




“으응… 왜?”


“집이 싫으냐?”


“…뭐, 그저 그렇지.”




사실 죽고 싶을 정도로 싫다.


어둡고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건 마치 무덤에 들어가는 느낌과 같다.


…라곤 해도 무덤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그는 무심히 질문을 던지면서도 스파게티를 맛나게 먹고 있었다.


그가 식사를 하는 것은 이제 겨우 두 번째 보는 건데도, 왠지 굉장히 친숙하다.


앞에서 먹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뚫어지겠다. 그만 봐라.”


“……아.”


“안 먹구 뭐해. 아무리 시간 많아도 국수 불려 먹으면 안되지.”




이건 뭔가.


마치 내가 시간이 남아서 놀아 달라고 그러는 것처럼 들리잖아.




“뭐야, 이래 보여도 나름대로 바쁘단 말이야.”


“아, 그러세요.”




조금 있으면 고3인 애한테 널럴하다고 욕하다니.


그리구 좀 있으면 기말고사라구.




“사실 나 다다음주부터 시험이다?”


“그렇겠네. 기말고사 기간이겠구만.”


“…공부하란 얘기 안 해?”




그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심드렁하게 말한다.




“내가 네 엄마냐, 아빠냐, 선생님이냐? 공부하라구 그러게.”


“에엥~”


“엥은 무슨 엥이야. 내가 너보고 공부하라구 그러면 할 거야?”




그건 그렇네.


아니… 공부하라면 할 지도… 음. 글쎄요.




“어머니 아버지가 지겹게 하실 거 아냐, 공부 열심히 해라. 대학 가야지. 뭐 그런 얘기들.”


“……흥.”




웃기는 얘기지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론 내 성적에 관심을 가진 식구는 없었다.


성적표 보잔 말도 없었고,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얘기하면 오빤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안 그래?”


“치, 그래두 시험 잘 보란 말이라도 해 줘야지.”


“글쎄. 근데 너 별로 공부도 안 했잖아. 수업시간에도 딴짓 하고.”


“엥”


“공부도 안 하고 시험 잘 보면 정당한 게 아니지.”


“흥이다.”




……


“아, 배 부르당.”


“집에 안 바래다 줘도 괜찮겠어?”




식사를 마치고 나와 걷다 지하철 역 앞에 당도하자 그가 물었다. 




“아직 대낮인걸. 혼자 갈 수 있어.”


“공부는 안 해도 되는데, 딴 데는 웬만하면 가지 마라.”


“왜?”


“위험하잖아.”




이럴 땐 진짜 오빠 같다.




“가만, 내가 공부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알아?”


“할거야? 공부…”


“내 맘이다.”




그는 피식 웃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 준다.




“이게 머야?”


“아이스 티 분말. 카페인이 있어서 조금이나마 잠을 쫓을 수 있을 거야.”




호오. 




“고마워.”


“그래, 조심해서 가라.”


“오빤 지하철 안 타?”


“난 학교 근처에 살아. 걸어가면 돼. 그럼.”


“……아,”




그는 손을 한 번 흔들더니 휘적휘적 걸어가 버린다.




……


어두운 무덤 속으로 귀환했다.


지난 주말도 그렇고, 그와 있다 오면 왠지 기분이 안정된다.


별 얘기는 안했지만.




생각해보면 그와 나의 대화는 굉장히 단순하고, 내용이 별로 없다.


그가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산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으니.


…아, 내가 어디 사는지를 그에게 말했던가?


뭐, 나중에. 나중에…




방에 들어가자마자 습관대로 CD를 넣고 볼륨을 키운다.


황량한 집에서는 음악조차 없으면 숨이 막힐 것 같기 때문이다.


침대에 발랑 누웠다. 순간 떠오르는 그의 음성.


‘공부도 안 하고 시험 잘 보면 정당한 게 아니지.’


…칫.




나도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 잘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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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똑)




“네~”




나직한 노크소리. 난 그것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다.




“에그, 우리 노리 공부하니~”


“웅, 낼 기말셤이라서…”


“그래~ 아유 이뿐 내 새끼. 할미가 마실 것 좀 가져다 주랴?”


“아, 아냐 됐어…”


“잠깐만 기다려라, 금방 내올 테니…”




할머니는 언제나 따뜻했다.


딴 집 어른들은 손녀한테는 별로 신경 안 쓴다는데, 울 할머닌 내가 공부하는 모습 보길 좋아하셨다.


옛날 분답지 않게 트인 양반이었다.


아니,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뭘 하든 좋아하셨다.




“여깄다… 뜨거우니까 조심하렴.”


“잘 먹겠습니다아~”




내가 좋아하는 유자차. 특히 겨울엔… 


난 나가시려는 할머니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할머니 할머니 잠깐만 앉아바바…”


“에유, 낼 시험이라면서…”


“에이이… 오늘 체육시간에 예진이가 글쎄…”




내가 하루 일과에서 제일 좋아하던 순간.


나는 책상에 비스듬히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떠들고,


할머니는 미소 지으시며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도 머리 속에 또렷한, 침대 한 자락에 앉아서 기품 있게 차를 드시던 그 모습…


할머니의 유자차는 달고, 끈적했으며,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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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그가 준 아이스 티를 타 보았다.


…음, 뭐 이건 이거대로 괜찮은 걸. ㅎㅎ




나는 문득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음악을 끈다.


그리곤 유자차를 마시던 때로 돌아가서, 굉장히 낯선 참고서를 꺼내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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