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십구번홀 - 12부

본문

미숙은 졸린 눈으로 몸을 부비며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팔 하나가득 나를 안아들였다.


가슴에 철렁이던 긴장감이 사라지며 안도의 긴 숨을 들이켰다.


"왜 나왔어?"


"허전해서 보니 당신이 없더라."


"너무 일찍 잠들어서 그런지 눈이 떠지길래 뉴스 좀 보려고."


"잠 많이 자야 건강하데."


"어제 술도 좀 과했나봐."


"새벽밥 해줄까?"


"냅둬. 조금 있다 아줌마 오면 먹지 뭐."


"아냐, 모처럼 당신 밥 직접 지어줄게."


"피곤하지 않겠어?"


"모처럼인데 뭐. 낮에 자도 되고..."




미숙은 주방에 가서 조금 부산한 소음을 내가며 새벽 밥을 짓고 있다.


모든 사람이 잠든 새벽에 아내가 직접 지어준 밥을 먹는 것은 꿀 맛 같은 행복을 먹는 것 이다.


"지숙이는 언제 간데?"


"한 참 개기다 가겠지 뭐."


"나 오늘 저녁에 제주도로 출장간다."


"왜?"


"장인어른이 손님 접대를 대신하라는군."


"피, 아빤 신혼을 방해 한다니까."


"우리가 아직도 신혼이야?"


"그럼, 겨우 삼년밖에 안된 새색신데."


"어휴, 애가 벌써 초등학교 다니는데 신혼이라 그러면 남들이 웃는다."


"아이, 몰라. 난 계속 신혼이란 말야."


"당신 정말 내가 좋아?"


"응, 행복해."




회사에 출근한 직원들은 어제 회식 분위기가 좋았는지 힘이 넘치고 있었다.


김과장만 맥풀린 사람처럼 게슴츠레한 몰골로 넋을 놓고 있을 뿐.


사생활까지 관여할 바 아니지만 너무 지나치면 병될 것 같은 우려도 없지 않았다.


오히려 젊은 직원들과 경쟁하듯 김미애의 치마폭에 빠져들면 회사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어서 약간의 간섭도 필요할 때가 있겠구나 싶어 끌끌 혀를 차며 방문을 닫아 버렸다.




"정사장님, 합의서 서명은 제가 할건데 괜찮겠습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설마 그쪽 사장님도 내려오는 것은 아니죠?"


"저 혼자 내려가랍니다."


"우리 쪽은 이사진을 포함해서 세명이 갈꺼니까 그런 줄 아세요."


"비행기표는 두장만 준비했는데 어쩌죠?"


"두장만 준비하라고 그랬으니 당연한거 아니에요?"


"그래도 세분이면 한 장 부족한데 서둘러 구할까요?"


"아뇨, 그냥 두장만 필요하니까 김포로 오세요."




저녁에 만날 정사장과 사전 약속을 마치고 골프장예약 관계를 확인했다.


물품공급이행각서를 구성할 표준안을 마련하고 사장님께 의견을 물어 자체 계약서를 완성하곤 노트북에 저장시켰다.


회사 사용인감을 외부에서 쓸 수 있도록 총무부에 의뢰하고 내일 있을 계약을 위한 반반의 준비를 다 마쳤다.




신입사원 김미애는 연속 이틀동안 김과장과 함께 한 듯 옷가지가 흐트러진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다.


직원들은 평소에 하던 업무에 깊이 빠져 두 사람의 달라진 모습에는 개의치 않는 듯 하다.




점심이 되자 해장국집을 찾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나갔다.


사랑이로부터 어제 약속을 밀쳐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싶어 나도 점심을 먹기 위해 혼자 회사 정문을 막 벗어난다.


"오빠!"


핸드폰을 진동시킨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사랑이었다.


"오, 웬일로 전화 없다 싶어서 신기했다."


"내가 전화 안하면 궁금하지?"


"아니. 전혀."


"흥, 그런 것 같은데 뭐."


"난 관심두 없다."


"정말?"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회사를 찾아온 사랑이를 데리고 레스토랑을 찾았다.


매번 만날 때 마다 커피 한잔이면 족히 만족하던 사랑이가 오늘은 일부러 점심시간에 맞춰 온 걸로 봐선 뭔가 할 얘기가 많은 탓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왜?"


"도장 찍자고 난리야."


"찍어 준다며?"


"위자료를 얼마나 받아야돼?"


"변호사한테 물어봐야지 그걸 왜 묻냐?"


"대충은 알아야 찍든 말든 할꺼아냐, 변호사는 공짜루 해준데?"


"그럼, 공짜루 묻기위해 그 멀리서 여기까지 온거니?"


"오빤 박식하잖아."


"임마, 무자격으로 법률상담하다간 변호사법 위반으로 쇠고랑 차는 세상이란 말야."


"우리가 남인가?"


"그럼 남이지."


"오빠 도장 찍기 전에 뭘 생각해야해?"


"꼭 찍어야 쓰겠니?"


"말마. 오히려 그 놈이 난리야."


"주객전도구나?"


"첨엔 내가 칼 자루 쥔줄 알았는데 궁지에 몰리니까 이젠 그놈이 길길이 날뛰고 도장 찍자고 난리치는거 있지?"


"너무 몰아 붙혔나 보구나?"


"오빠 같으면 안 그랬겠어?"


"하긴, 니 남편이 심하긴 심했다만, 적반하장이군."


"오빠두 화나지?"


"조금은."


"겨우?"


"가족 문제는 가족만이 진실을 안다고 했잖니.


니들 문제는 니들 속에서 실마리를 풀 수 있을 줄 알았지 뭐야."


"나두 참으려 한 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놈이 날뛰니까 못봐주겠는거 있지."


"니가 충분히 생각한 것이라면 부모님에게도 상의해 봤니?"


"내가 한두살 먹은 애들이야? 그런 문제로 엄마아빠 걱정 끼쳐드리게?"


"말은 그래도 부모님들 입장에선 항상 넌 어린애일 뿐인걸."


"오빠두 늙었나 보네."


"정말 나도 늙은이 축에 끼지?"


"아냐, 오빤 아직 씽씽해."


"뭘 보고 그런 소릴 하니?"


"척 보면 알지 꼭 겪어봐야 아나?"


"짜슥."




사랑이가 이혼도장을 찍겠다고 결정적으로 결심한 것은 애 딸린 여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만난 여자마다 관계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갖고 있는 돈 마저 훔치듯이 뺏아가더니 살림을 차린 년을 찾아 냈다는 것이다.


터키탕에서 일하던 늘씬한 아가씨와의 사랑에 푹 빠져 들었다는 것이다.


여자축에도 끼기 어려운 사람과 살림을 차렸다는 것은 자신을 너무나 무시한 처사라고 울분을 토했다.


사랑이는 남편의 어이없는 행각을 거품을 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 미친 놈이 글쎄, 전신 안마를 위해 오일을 듬뿍 뭍히고 몸으로 애무하던 여자애 한테 정신이 팔렸다는것 아냐."


"대단한 사람이군."


"추잡스럽기도 하지. 이놈 저놈에게 몸으로 문대던 여자를 들이앉힐 생각을 했으니."


"몸매는 끝내 줄걸?"


"몸매로 여잘 평가해?"


"남자들은 다 그래."


"오빠도?"


"나도 예외는 아니지."


"암튼 그 놈이 마사지걸한테 풀 빠져서 같이 살자고 그랬나봐.


그 년이 그 짓거리를 그만 둘꺼니까 살림 차려달랬나봐.


슬금슬금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가길래 사업에 쓰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세대 주택 얻어 줬더라구.


골빈놈이 생활비조로 매달 삼백만원씩 바치기까지 했구."


"그 여자가 니 남편만 바라보고 살았을까?"


"누가 아니래?


그 놈 생각으론 쭈쭈빵빵한 년 하나 건졌다 싶어 기분이 째졌겠지만 센터직원 말에 의하면 매일 남자를 바꾸며 난잡하게 산다는거야."


"봉 잡힌 셈이군. 집 얻어준건 어떻게 알았어?"


"직감이지. 여자는 날카롭잖아."


"그래서?"


"동사무소에 이사온 날짜를 확인해봤는데 삼개월 됐다더군.


복덕방 다 뒤져서 방 얻은 곳을 찾아냈는데 멍청하게 이름으로 덜렁 계약한거 있지?"


"거참, 묘한 사람이군."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지?"




사랑이 남편은 입소문으로 쭈쭈빵빵한 아가씨들이 안마 서비스를 한다는 강남을 찾았다.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칸막이 된 휴게실의 긴 의자에 몸을 눞히면 온 몸에 오일을 잔뜩 바른 서비스걸이 육탄으로 문지르며 안마를 시작했다.


아슬아슬한 쾌감까지만 도달하면 싹 돌아서는 아쉬운 서비스걸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미련이 남아 아쉬운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 정도였다.


자신을 온 몸으로 애무하던 아가씨가 여태까지 왜 이런 곳에 감춰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가슴을 진탕시켰다.


온몸 서비스를 마치고 돌아서는 아가씨의 손을 잡아 끌고 부족한 나머지를 해결할 방법을 말해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리고 말았다.


"이차 안해요." 냉정한 메아리만 돌아온다.


"여태 본 사람 중 아가씨가 제일 멋져. 특별히 안될까?"


"다른 방 예약 때문에 나갈께요." 


돌아서며 나가는 서비스 걸의 모습이 너무 멋있고 당당해 보인다.


카운터를 보는 주인에게 이차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매달렸다.


"귀뜸 해 보겠지만 어려울껄요. 이차는 없으니까."


"저 아가씨만 신경써주면 단골할께요."


"단골? 어차피 여기 오는 사람은 모두 단골인걸요?"




첫 날은 그렇게 가슴만 설레인 후 물러서야 했다.


그날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미스박의 단골 손님이 되어 정을 쌓아 나갔다.


완강하던 거부감도 어느새 눈 녹듯이 다가와 조금은 더 다정하게, 조금은 더 부드럽게 애무하는 것이 이쯤에서 이차를 제의해도 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오늘 어때?"


"좋아요. 길 건너 노래방에서 기다려요."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드디어 미스박의 이차 승낙을 받아내곤 사랑이의 남편은 세상을 모두 얻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미스박, 가슴이 너무 예쁘더라."


"자연산이야."


"정말?"


"그럼, 난 섹스도 함부로 안하고 몸 관리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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