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광풍폭우(狂風暴雨) - 5부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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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젊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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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이 되자 어머니는 오랜만에 자식을 위해 손수 음식을 준비하셨다. 어제는 아들의 여자친구들이 해놓은 것으로만 먹인 것이 마음에 걸리신 듯, 준비를 많이 하셔서 후는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었다. 후가 상처사이로 밥이 삐져나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밥을 많이 먹자 어머니께서도 안심하시는 표정으로 설거지를 하시더니 이내 집으로 가신다며 여장을 꾸리셨다.




“엄마, 매칠 이따가 간데미?”




“문디~~! 고양이 쥐 생각하나? 내가 안 가마 니 잔소리 우예 듣고 있으라고? 그라고 너거 아부지 내 밥 아이마 식사도 잘 안하신다 아이가? 몸조리나 잘 하그라. 내 가들한테 일러놨으니까내 알아가 잘 할끼다. 그라고 니 서울에서 아르바이튼가 뭐가 한데미? 아부지한테는 내가 잘 말해 놀끼니까 설에 보자.”




“순진이 가들한테 또 머라캤는데? 이상한 소리한 거 아이제?”




“내가 그럴 사람이가? 그리고 둘 중에 하나 결정나거던 설에 집으로 델꼬 온나.”




“됐따 마. 그 얘긴 고마 해라. 갑시더. 서울역까지 내가 같이 가주께.”




“치아라. 올 때도 혼자 왔는데 갈 때라고 몬 하겠나?”




“올 때는 몰랐으이 그란 기고… 갈 때라도 가야델 거 아이가? 고집 피우지 마소.”




후가 따라나선다고 하자, 어머니는 펄쩍 뛰시지만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도 아직까지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보다 많이 나아져 조금씩은 움직일 만했기에 어머니도 그런 것이려니 하신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온 그는 어머니를 세피아로 모실까 생각해보지만, 아무래도 아직은 무리인 듯하다. 그는 택시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서는 새마을호 열차표를 끊었다. 비싼 거 탈 필요 없다며 어머니가 말리셨지만, 빈 좌석이 없는 토요일이라 후도 입석으로 보내드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어머니는 기차에 오르실 수 있었다.




후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는 순진과 순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눈으로 까딱하고 인사를 하더니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던지고 침대에 누워버렸다.




“후야!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




“어머니는 잘 내려 가셨어?”




“그래.”




복잡한 심정을 대변해주듯 그의 대답은 짧았다.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난 다음부터 그는 계속 고민을 해왔다. 어제 어머니는 농담 삼아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셨지만, 그것이 내내 가슴 속에서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도 처음에 순정을 안지 않았으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며 자책을 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기 때문에 다른 방책을 모색해야했다. 게다가 두 여자에게 자신과의 관계가 들통 난 이상 둘 다를 만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들의 질문에 충실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후 그녀들이 무언가를 자꾸 물어왔지만, 그는 자신만의 생각에 잠긴 채 빠져나오지를 않는다. 그녀들은 아무 말 없이 그냥 TV나 보고 책이나 읽으며 그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그 다음 며칠간은 그녀들은 약속을 한 듯 그의 집으로 함께 출퇴근을 하며 그의 식사를 챙겨주고 상처를 살폈지만, 그에게서는 필요한 말 이외에는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녀들이 돌아갈 때에도 ‘잘 가.’라는 말 밖에 하지 않을 정도였다. 후는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침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내려가시고 그 다음 월요일, 점심때가 지나서 주만이 학교에서 하는 본고사 대비 보충수업을 마치고 그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순진과 순정은 방해가 된다며 학교로 가버리자 주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싸부! 몸은 좀 괜찮아요? 지난주에 보니까 많이 아픈 것 같더니… 그래 전화로 말씀하시지 왜 힘든데 찾아오고 그래요? 안 그래도 저희 엄마도 싸부 걱정 많이 하시던데……. 전화 받고 얼마나 놀랬다구요?”




“왔냐? 그건 또 뭐냐? 또 약이야? 지난 번 것도 많이 남았는데…….”




“이거랑 같이 먹으면 빨리 상처가 아물고 기운 차릴 거래요.”




“이거 원……. 그래 나중에 어머니께 고맙다고 전해드려. 아니지, 어머님 지금 집에 게시지? 전화라도 드려야겠다.”




“엄마 지금 친구분 만나러 가셨어요. 이따 제가 말씀드릴게요. 참, 형! 저 이거 좀 봐주세요.”




주만은 자신의 가방 속에서 본고사 모의고사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후는 침대 옆에 기대어 그것을 받아들고는 잠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주만의 실력이 많이 좋아진 것을 칭찬하며 주만이 궁금해 하는 부분을 설명해주었다. 주만의 학습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후는 주만이 웃으며 반기는 것이 궁금해 고개를 돌려보니 민철이 음료수 상자를 들고 온 것이 보였다.




“형! 괜찮으세요? 이야~~ 형이 이 정도면 상대방은 안 봐도 비디오겠네요? 근데 설마 누나가 찌른 건 아니죠?”




“자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근데 넌 어쩐 일이냐? 요새 노느라고 정신없는 녀석이?”




“누나가 이야기를 안 해줘서 주만이한테 들어서 알았어요. 주만이가 여기서 만나자 그러더라구요.”




“그래, 잘 왔다. 안 그래도 네 녀석 때문에 집에 한 번 가려던 참인데……. 너희들 점수 발표가 언제냐?”




“한 보름 정도 남았어요.”




후는 잠시 동안 그들의 진로문제를 이야기하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야~! 제자들아……. 너희들, 옷 좀 줘봐.”




“싸부! 옷은 왜요?”




주만은 이상한 듯 머뭇거렸지만, 민철은 알겠다는 듯 옷 속에서 담배를 꺼내주었다.




“짜식이 눈치는 빨라 가지구……. 허헛~~!”




그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요 며칠간 시스터즈의 감시가 심해 연기 구경한 번 못 했던 터라 그냥 누워서 천장만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 비록 고등학생이지만 - 녀석들이 담배를 피운 다는 사실이 생각나 한 대 빼앗아 핀 것이었다. 그의 입가에서 연기가 도너츠를 이루며 날아다니자 그는 ‘그래 이맛이야!’를 연발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바라본 스승은 흡사 뽕 맞은 또라이 같았다. 그는 오랜만에 당겨본 연기에 심취한 나머지 녀석들의 한심하다는 듯한 비웃음을 보지 못했다.




그가 제자들을 보내고 몇 분 되지 않아 시스터즈가 방으로 돌아왔고, 후는 오랜만에 그녀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너희들 왔어? 오늘 저녁은 시켜먹을까? 며칠간 너희들 많이 힘들었잖아.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녀들은 후의 낌새가 요 며칠과는 다른지라 잠시 놀라는 표정이었지만, 방 안을 감도는 이상한 냄새에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이윽고 그녀들은 방안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주만과 민철이 두고 간 담배갑을 찾아내고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후는 사색이 되어 다시 묵비권을 행사하려 했지만, 이미 한 번 바뀐 분위기는 돌아오기 힘들었다.




“얘가, 얘가? 요 것 때문에 그렇게도 기분이 좋았어?”




“며칠간 말 한 마디 않을 때, 우리 기분은 생각이라도 해봤어? 근데 겨우 담배 하나에 이렇게 사람이 바뀌냐?”




“…….”




“왜 또 말 안 하시려구? 어디 한번 해봐!”




“그래? 누가 겁 낼 줄 알아?”




담배 사건 이후 후는 시스터즈에게 볶이는 일상을 되풀이했다. 그녀들은 그의 양다리에 보복이라도 하듯 그의 모든 행동에 사사건건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고, 급기야는 그의 상전 노릇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후는 아침부터 그녀들에게 시달리다가 그녀들이 저녁 늦게 퇴근(?)을 해야지만 자신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시간을 모두 시스터즈에 대한 고민을 해결 하는데 썼다. 그는 상태가 조금 나아지자 다시 과외를 시작했다. 주만과 주진은 아직 그의 몸 상태가 온전히 나은 것이 아니라 그 주에는 그의 자취방을 다시 찾아왔다. 그리고 순영은 빼먹은 시간을 채우기 위해 금요일 오후의 그가 가진 모든 시간을 빼앗아갔다.


그는 회복이 빠른 편이라 치료를 시작한지 열흘도 채 안 되어 상처의 실밥을 뗄 수 있었고, 그의 몸은 이제 운전대를 잡아도 될 만큼 좋아졌다. 게다가 어머니들이 몸에 좋다는 것을 자꾸 가져다 먹이는 바람에 몸무게도 3kg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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