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고교생일기 - 1부 6장

본문

정말 통탄스러운 일이다.


잘 가다가, 그것도 시내에서 예쁜 여자애 하나 봤다고 붙잡아서 따먹으려는 들이대 정신이 발휘되고 있었다.


아직도 법치국가 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불법은 아니지만 헌법이 아닌이상 국민을 속박할 수 있는건 없다고 분명 명시되어 있지 않나?


양아치는 임소연의 손목을 붙잡았다.




" 무거워보이네. 어디까지 가? 내가 들어줄게. "




" 야 임마, 내가 들테니까 너는 그냥 가라. "




임소연이 울상을 짓고 뒤를 둘러보았다.


아까까지만해도 있었는데. 


그 여자랑 지금 뭐 하고 있어요?




" 아저씨! 이 오빠들이 자꾸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거든요. 좀 도와주세요. "




양아치와 양아치 친구-이하 뺀질이-가 킥킥거렸다.


뺀질이가 임소연이 도움을 요청한 아저씨에게 말했다.




" 아저씨, 그냥 가요. 무슨 21세기에 백마탄 왕자님을 꿈꾸시나. "




21세기에 여자애 강제로 끌고가서 어떻게 해보려는 병신들도 있는데 그다지 신기할건 없다.


아저씨는 헛기침만 하고 그냥 가버렸다.


임소연은 무섭기도 했지만 시내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것에 대해 더 어이가 없었다.




" 왜 그러세요? 싫다니까요. 저 집에 가야돼요. "




" 딱 봐도 튀었구만. 너 저쪽 길에서 왔지? 저기 롯데백화점 있는데 아니야? 원조했어? 와, 이거 아주 날라리네. 학교에서 이름좀 날려보고싶나보다. 그치? "




" 조퇴한거에요. 진짜 신고할거에요. 집에 가면서 들린거니까 좀 놓으라구요. 흑.. "




임소연은 말하다가 서러워서 울었다.


진짜 오늘 다 왜 그래?


아까 걔도 왜 그 여자랑 가는거야?




뺀질이가 제딴엔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봐야 듣는 입장에서는 병신삼룡이 헛소리다.




" 너 교복보니까 거기 어딘지 알것같은데. 거기서 소문나면 진짜 좆되는거 한순간인거 알겠네. 그치? 머리 좋으니까. 잠깐 밥좀 사달라는거야. "




임소연이 주택가에서 흑흑거리면서 울자 지나가는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힐끔거렸지만 양아치가 눈을 부라리자 다들 깨갱하면서 빠졌다.


실제론 뭣도 없는자식들이 이상하게 이런 일엔 열과 성을 다한다.


자기 힘이 필요한 곳은 따로 있지 않을까?




" 야, 그냥 가자. 또 2차 잡았나보지. 마침 거기 아는애 있으니까 걍 찔러주고 가자. 어차피 오늘 아녀도 나중엔 만날텐데.. 뭐 그땐 입장이 좀 달라지겠지만. "




양아치가 외고에 아는 애가 있을리가 있나.


어쨌거나 손목을 놔주자 임소연이 훌쩍거리면서 손목을 어루만지다가 돌연 깜짝 놀랐다.




무단결석. 원조교제. 양아치들.


키워드 하나하나가 썩 건전하지는 못하다만은 같이 있으면 더 흉험하다.


도리어 물컵에 잉크 한방울 떨어지면 물 색깔이 변하듯이, 몸은 어른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들인 청소년들에게 소문이 들어가면 그야말로 없던 얘기까지 나오는건 뻔하다.




" 하지 마세요. 저 원조교제같은거 안한단 말이에요.. " 




" 그럴것 같더라. 고등학생이 셔츠랑 치마는 줄여입고 외모도 쌔끈하니까 딱 공부만 열심히 하게 생겼네. "




" 난 무슨 영재인줄알았지. 하기사 너같은 무식한새끼가 그걸 알겠냐? "




" 지는.. 씨발놈이. 그냥 따라와서 밥 한끼 먹여줄래, 아니면 그냥 가서 다음날 학교에서 좀 유명해질래? "




" 연예인 되는거 아냐? "




양아치가 한마디 하면 뺀질이가 옆에서 사족을 붙였다.




" 그놈의 밥 한끼. 덜 맞았냐? "




임소연은 가슴이 또 저려오는걸 느꼈다.


이번엔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였다. 


양아치가 움찔하더니 나를 돌아봤다.




" 이 새끼가 진짜 보자보자하니까 우리가 호구로 보이나보네.. PC방에서 운좋게 몇대 치니까 효도르도 이길것같지? 그치? 너 알바 거기 있어라. "




누나가 피식 웃었다.




" 사내새끼가 진짜 못났다. 오죽 못났으면 여자를 강제로 따려고 해? "




시내 한복판에서 이러고 있으니 무슨 퍼포먼스 하는것 같다.


내가 다 얼굴이 뜨겁네.




" 따라와, 시발놈아. 넌 아까 맞은거보다 더 맞아야된다고 지금 아이폰이 알려주네. 니네 핸드폰 있긴 하냐? "




계단에 떨어질때 액정 박살나고 하나는 두동강나던데.


양아치가 이를 갈았다.




" 서울에서 못 살줄알아라. 개새끼가.. "




*




" 쇼도 그 정도면 전위예술급이지. 시내 한복판에서 여자애를 납치를 하려고 해? "




뺀질이가 먼저 스탭을 밟았다.


복싱좀 배웠나? 그래봐야 6개월동안 줄넘기만 시켜가지고 그 있는듯 없는듯한 근성으로 그냥 구경만 하다가 나왔을것이다.


양아치는 뒤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래봐야 와인색 세미정장에 아까 던진 실론티 얼룩이 남아 뺀질이는 보기에 별로 좋진 않았고, 양아치도 왠지 느낌이 좋지않았다.




나는 으르렁거리고는 바로 뺀질이한테 원투, 그리고 로우킥을 쳤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넘어뜨리려고 찬거에 가깝다. 


담배, 술로 찌든새끼들 몸이 그렇지 뭐. 멸치?




원투는 잘 피한것 같은데 마지막에 한대 맞아서 휘청거린다. 








달려들어서 주먹을 계속 휘둘러댔다.


솔직히 말하면 아드레날린때문에 정신도 제대로 못차리겠고, 그냥 맞아도 아프지 않으니 계속 때릴뿐이다.


밑에 깔려있는 뺀질이가 처음에 씨발새끼, 개새끼 하면서 욕을 하다가 계속 때리니까 켁켁거리면서 손을 휘저은다.




" 니네 겉절이지? 그냥 친구들 따라 강남간다고 좀 센척 하고 다니는거 아니냐? "




양아치가 뺀질이 대신 대답했다.




" 나이도 어린새끼가 우리 몰라서 그랬다고 하면 처음엔 봐주려 했는데 이젠 못봐주겠다. 꿇어, 씨발새끼야. "




무슨 80년대도 아니고 나이프를 들고다녀?




" 찌를순 있냐? "




중학교때 저렇게 장난을 치다가 갑자기 화내면서 칼로 찌른다면서 공갈을 치는놈이 있다.


그땐 정색하면서 못찌르면 뒤진다, 라고 하면 다시 장난으로 돌아가는 경험 누구나 한번씩 있지않나.


적어도 비슷하게요.




" 하지마! "




아영이 누나가 놀라서 소리쳤다. 무슨 지금 삼류영화 찍나?


양아치가 팔쪽을 찔렀는데 솔직히 더 당황한건 나다.


진짜 찌르는 미친새끼가 여기있다.


칼이 깊게 박힌건 아닌거같은데, 피도 영화처럼 뿜어지고 그러진 않지만 어쨌건 왼팔에 코발트색 후드티를 찢고 박혀있긴 했다.


양아치도 진짜 안피하고 맞는 새끼가 있었는지 놀라가지고 제풀에 도망갔다.


뺀질이, 너는 언제 거기까지 갔냐?




" 아야.. 선생님. 아파요.. "




" 괜찮아? 응? 어떡해.. 은성아. 괜찮아? "




" 그냥 살짝 찔린거에요. "




누나가 어떡해, 어떻게 해만 연발하면서 자꾸 내 뺨을 만졌다.


나는 부드러운 손이 뺨을 쓸어서 어쩐지 야릇한 흥분감도 들었고, 아드레날린이 가시지 않았는지 여전히 숨을 몰아쉬었다.


예전엔 연필가지고 장난치다가 박힌적도 있었는데 비슷한 느낌이다.




임소연은 롯데마트 쇼핑백을 들고 이상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막연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느낀대로 말하자면.. 놀람과 우려가 섞인 시선?




" 쟤들이 아까 하는 얘기 들었는데 왜 거기 있었어요? 집에 있을줄 알았더니 없어가지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소연이때문에 멋적어서 과도같은게 박혀있는 왼팔을 들었다가 으악, 하면서 오른손으로 감싸쥐었다.


갑자기 아픈건 졸라게 아프네.


뺨을 쓰다듬는 아영이 누나의 손길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영이 누나는 마치 쟤였어? 하는 표정으로 쳐다봐서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과연 그런 바디랭귀지였을까? 누나는 다 들리게 중얼거렸다.




" 누구 구해주려고 칼도 대신맞았는데 고맙단 말도 못듣고 되게 억울하겠다. 그치? 나는 아까 고맙다고 했는데. 은성아 많이 아파? 병원가자. 응? "




고맙다고 했었나요? 아무튼.




" 그렇게 아프지는 않은데.. 으악! 거기 아프다니까요. 이거 나름 새옷인데.. "




" 누나가 사줄테니까 일단 병원부터 가자. 응, 어떡해. "




" 여기요.. 잠깐 집에 있게해줘서 고마워가지고 밥해주려고 했는데.. 그냥 학교에나 가야겠네. 고맙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어요. "




소연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왼팔을 한번 물끄러미 보고는 돌아갔다.


봉투 속을 보니 국수 면발하고 잼 병같은것들이 여러 병 있었다.




누나가 그걸 힐끔 보더니 " 애가 무슨 저렇게 무례해? 무슨 고마운줄도 모르고.. 너는 한식 더 좋아하지? 파스타 안좋아하지? "




" 괜찮으니까 병원좀 가요. 근데 이거 뽑아야되요, 말아야 해요? "




*




별 이상 없단다.


피가 응고되어서 칼이 잘 안빠진다고 했지만 무슨 주사 한방 놓더니 슥 하고 빠졌다.


물론 꾹 눌러서 지혈했는데 그게 무지하게 아팠다.




" 괜찮아? 무슨 애가 그렇게 싸가지가 없어? 나같으면 하루동안 시중이라도 들었겠다. "




내가 예? 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누나가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




" 그나저나 걔들은 왜 그렇게 못된짓만 하고다녀? 칼까지 가지고다니고.. 진짜. "




꽤 나이가 있으신 의사선생님은 좋을 때로구만, 하고는 다음 환자를 데려오라는듯 간호사한테 눈짓을 했다.


나는 먼저 일어나서 누나를 데리고 나왔다.




" 뭐 그런거 가지고 종합병원까지 와요? 살다살다 응급실은 처음 와보네. "




" 칼에 찔렸는데 그럼 동네병원가서 주사를 맞어? 너 왼손잡이야, 오른손잡이야? "




양손잡이요.


자위할때 양 손 다쓰고, 밥은 왼손으로 먹고, 글씨는 오른손으로 씁니다.


그래도 나는 왼손잡이라고 했다. 


모성애를 자극해야한다는 말은 오늘 그 설문조사 앙케이트를 보기도 훨씬 전부터 들어왔던 쌍팔년도 연애기법아닌가. 




" 왼손잡이요. "




" 밥은 어떻게 먹어? 너 오늘 굶을건 아니지? "




" 한끼정도야 뭐.. 오늘은 아침이랑 실론티 말고 먹은건 없긴해도 괜찮아요. "




누나의 여우같은 두 눈이 가늘어졌다.




" 요게.. 알았어. 누나가 밥 사줄게. 선생님이 학생한테 사주는거야 뭐, 유별난 일도 아니지만. "




강조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나저나 소연이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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