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향기에 취하다 - 11부

본문

부드럽고 달콤한 그녀의 향기에 취하다...




<동병상련>




사람과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 


진솔한 대화? 상대방에 대한 호의? 또는 스킨십? 


그럼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줄만한 매개체는 뭐가 있을까?


술이다.


상황에 따라 격렬한 운동이나 첫 호감도 중요하지만 술이라는 취하는 마법의 물만큼 쉽고 


자연스레 이어줄만한 것들은 많지 않다.




눕자마자 움직임조차 사라진 샛별은 거의 기절해버린 것 같다. 입고 있던 옷을 벗겨 편안한


슬립형 잠옷으로 바꿔주는데도 감은 눈은 뜨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수줍어 하다못해 이


불속으로 숨어버릴 그녀였지만 취한 샛별은 준석의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 샛별이를 두고... 나도 참~’




만취한 샛별의 모습을 처음 보는 준석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색다른 사랑이 느껴진다. 언제


나 완벽에 가까운 자기관리를 하는 여자의 흐트러진 모습이 꽤나 자극적인 것이다.


거실에선 여울이 때려 부술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상을 치우는 동안에도 샛별의 얼굴을 내


려다 보던 준석은 살포시 샛별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상큼한 향이 그의 자지를 불끈 솟게 


만들어 버리지만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안방의 문을 닫는다.


술에 취한 샛별을 범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준석이었다.




“처제~ 그냥 둬.. 내일 해”


“이거만 담가 놓구요.. 이렇게 담가두면 내일 설거지하기 편하잖아요”




준석이 베란다의 그릴을 치우는 동안 여울은 상의 음식들을 치우며 자리를 정돈한다. 술이 


들어가서인지 둘은 언제 어색했냐는 듯 대화까지 나누고 있다.




“처제... 김실장 어땠어? 언니가 처음부터 소개시켜주려고 벼르고 있던 모양이던데”


“김실장님이요? 뭐 재밌고.. 그냥 그랬어요”




“그게 전부야?”


“네! 그럼 한번에 사랑이라도 빠져야 해요? 후훗!”




여울의 말에 준석은 궁금증을 참으며 말을 아낀다. 더 꼬치꼬치 캐묻지 못하는 것이 답답함


으로 자리 잡아 가슴까지 답답해지는 것 같다.


남은 장어와 소주를 쟁반에 받치고 들고 나오는 동안도 준석은 물어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갈등으로 고민중이다.




“형부! 왜요? 나 김실장님 만날까?”


“으..응? 뭐.. 마..마음대로! 그런 걸 왜 나한테 물어?”




“물어봐 달라고 이마에 쓰여 있는데요?”


“내 이마에?”




준석은 손바닥으로 이마를 비벼 써있지도 않은 글자들을 지워나간다. 여울은 잔에 소주를 


따르며 준석의 행동에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다고 이마를 지우면 표정에 쓰여 있는 건 어쩔라구요?”


“뭐야~ 그래서 만나겠다는 거야? 뭐야?”




놀림당한 것이 억울한 듯 목소리에 톤을 높인 준석이다. 사실은 그것이 억울한 게 아니라


여울이 김실장을 만나보겠다는 말을 할 것 같아 초조했던 것이다. 조금은 신경질스런 반응


을 보인 준석이 더욱 웃겨 보이는 여울은 소주잔을 건네주며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다.




“만날까? 말까?”


“만나지마!”




“왜요?”


“응? 그.. 그게... 아무튼! 나이도 많고... 그냥... 뭐냐.. 그...”




더듬거리는 준석을 바라보는 여울의 눈망울이 빛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감정들을 확인해보


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준석의 입에서 어떤말이 나올까 궁금했던 것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꽉 닫은채 얼버무리기만 하는 준석이었다.




“왜요... 네? 왜요 형부?”


“어? 만나고 싶으면 만나야지~ 내가 그냥 농담한거야~”




여울은 준석의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눈을 좌우로 굴리며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


이 샛별이 말한 버릇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서운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 자체가 지킬 것이 있다는 무언의 다짐이란 것을 모를 리 없었다.




‘형부~ 맞아요, 우린 지켜야 하는 선이 있잖아요’




준석은 이미 자신이 뱉어놓은 말에 후회도 하고 칭찬도 번갈았다. 도린의 말대로 여울이 눈


치를 챘을거라는 생각이 들며 샛별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모르기는 해도 인간이기에 부적


절한 관계로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일은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형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생각? 아니야 아무것도~”




“형부~ 저랑 ‘짠’해요!”




여울은 소주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 했다. 얼떨결에 잔을 든 준석은 여울에 잔에 부딪치고 


입안으로 털어 넣는다. 알싸한 느낌의 소주가 유독 쓰게 느껴지고 여울이 먹여주는 안주를 


받아먹는다.




“형부... 우리 다시 친하게 지내요! 그 날 밤은 지금 이시간부로 잊고 우리 새출발해요”




어떻게 들으면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넌 사람처럼 말을 하는 여울이었다. 더 이상 불편한 관


계가 싫었던 것도 있지만 처음으로 언니의 것을 뺐어볼 마음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스스로


를 울타리에 가두는 그녀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여울의 말뜻을 모르지 않는 준석 역시 다가왔다 멀어져가는 아득한 향기


가 아쉽지만 그녀의 말을 존중하고 싶었다. 자신 스스로가 하지 못한다면 상대방이 멀어지


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그였다. 




“우리가 무슨 일 있었나? 그날은 아는 오빠와 동생 사이였지~”


“헤헤... 그럼.... 오빠! 우리 한번만 안아볼까요? 그 날밤 같이?”




“좋지~”


“헤헤헤”




준석이 두 팔을 활짝 펼치자 그 안으로 파고드는 여울이다. 그리고 준석의 심장소리를 들으


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숯과 장어의 탄내가 베인 옷이지만 그 향내가 나쁘지만은 않다. 그


날밤보다 훨씬 따뜻하고 포근한 준석의 품이 느껴지자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온다.




“여울아~ 어때! 편해?”


“응.. 편해~”




도저히 이 향기를 잊고 지낼수는 없을 것 같은 준석은 여울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한껏 감


싸준다. 코를 찌르는 향기가 몸을 녹여내는 듯하다. 마지막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래야만 


했다. 더 이상 가까워진다는 것은 준석도 여울도, 샛별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는 것이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울은 준석의 품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녀 역시 마지막이


라는 생각으로 갖지 못 할 언니의 것을 느끼는 중인 것이다. 며칠 내내 자신을 의심했던 여


울은 준석의 품에 안기고서야 그 감정이 좋아하거나, 혹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고 보듬던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서로의 몸에서 떨어져나간다. 아쉬


움도 한가득 묻어나는 미소였다. 서로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안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다음을


기약한다. 말은 잊자고 했지만 마음만은 여전히 서로의 품안인 것이었다.




“그나저나 잘 가고 있나~”


“누구? 아~ 회사 사람들? 형부! 도린씨가 형부 좋아하지?”




이번엔 여울이었다. 준석은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여기저기서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


느냐는 물음에 멀미나는 비행기를 한껏 탄 것 같아 속까지 울렁거릴 기세였다.




“도린씨? 아니! 절대...”


“그래? 장담하지 마요... 내가 보기엔 좋아하는 눈치던데.”




“에이~ 아니야! 그냥 회사에서 매일 보니까 친해서 그런 거지~”


“그럼 말구~ 헤헤”




말투마저 편안하게 변해있다. 그러나 저녁식사 자리에서 본 도린의 눈빛은 분명 예사로운 


눈빛이 아니라고 느껴진 여울이다. 빈 소주잔에 술을 채우는 동안 준석은 휴대폰을 들고


도린에게 전화를 건다. 마침 술먹은 직원들이 잘 가고 있나 궁금해진 것이다.




[네. 사장님!]


[도린씨 안 졸고 운전 잘하나 확인 전화 했어요]




[사장님도....정과장님은 조금 전에 내려드렸고요 김실장님 댁 근처예요. 저는 여기서 택시타


면 기본요금이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래도 모르니 택시 타면 차번호 문자로 찍어둬요]




[네~ 사장님! 쉬세요]


[그래요... 조심해서 들어가요]




도린이 전화를 끊자마자 젖힌 의자를 바로세우며 김실장이 한바탕 잘 자고 일어난 듯 찌뿌


둥해 보이는 몸을 이리저리 꺾어댄다.




“누구야?”


“사장님이요.. 잘 가고 있나 확인 전화요”




“애들도 아니고... 그나저나 언제까지 그렇게 지지부진 할꺼야?”


“기다려 보세요~ 급하면 체한다니까요?”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질문을 뱉어내는 김실장이었다. 그러나 태연스레 그의 말을 받아 대답


하는 도린은 신호에 걸려 브레이크를 굳게 밟고 고개를 김실장에게로 돌리며 눈을 찡긋한


다. 하지만 이마에 손을 얹고 눈을 지긋이 감은 김실장은 다시 잠에 빠져든 듯하다.


다시 정면을 향한 도린은 녹색불로 바뀌자마자 엑셀레이터로 발을 옮겨 차를 미끄러뜨린다.


그리고 얼마가지 못해 다시 브레이크를 밟는다.








“도린씨! 오늘 와인 한잔 할까?”


“와인이요?”




“어... 낮에 다 못한 말도 좀 할겸...”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잠깐이면 돼~ 가자고!”


“........”




준석이 퇴근할 때 하던 얘기를 마무리 짓겠다는 투의 김실장은 도린을 회사에서 멀지않은 


곳으로 이끌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도린이었지만 무언가 심각한 얼굴을 한 김실장의 


말을 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스쳐 그를 따랐다.




조용한 째즈가 흐르는 어두컴컴한 와인바에 앉은 두 사람은 안주와 와인을 놓고 상당히 오


랜 시간을 침묵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뜸을 들이시나..’




어울리지 않게 폼을 잡고 앉은 김실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


라도 상당히 충격적인 말을 기대하는 그녀였다. 사석으로까지 자신을 이끈 것은 분명 회사


일은 아닌 듯 했다.




“실장님! 하시려는 말씀이...”




도린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김실장에게 물었다. 짧고 간결한 단도직입적인 질문이었다.


미간사이를 굳게 잡고 정신을 차리는 듯 행동을 한 김실장은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


습이다. 그리고 도린에게 속마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도린씨! 웃지 말고 들어줘. 그리고 내가 느낀 그것이 맞았으면 해”


“말씀하세요”




“나, 사실은 사장 와이프를 마음에 담고 있어”


“네?”




도린은 마신던 와인을 뿜어 낼 뻔했다. 충격 그 이상의, 상상도 못할 얘기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해는 갔다. 여자가 봐도 충분히 매력적인 샛별이 남자의 눈엔 얼마나 품고 싶고


가지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세울지, 남자가 아니어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성인이니 탁 까놓고 얘기하지... 사실 한번 품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마음이


점점 흔들리고 있어... 내가 보기엔 도린씨도 사장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 같은데...“


“........”




“내 느낌이 틀리지 않다면 우리 서로 돕는 게 어때?”


“...............어떻게요?”




김실장의 제안이 귀에 들어오는 도린이었다. 결국 그에게도 거짓말을 하면 할 수 있었지만


탐이 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을 성격의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김실장에게는 덜미를 잡힌 것이었다. 결국 동병상련의 심정으


로 김실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솔직히 그 샛별이라는 여자에게 다가가기가 아주 힘이 들어... 숫처녀보다 정복하기가 더 


힘든 여자야~ 사장 와이프 성격 도린씨도 알지?“


“네... 콧대도 높고 눈도 높은... 정도가 아니면 걷지 않는 스타일의 여자죠”




도린은 와인잔을 조용히 내려놓으며 김실장의 눈에 눈을 맞췄다. 사람 잘보기로 소문난 도


린이기에 마음을 열고 진지하게 다가오는 김실장의 눈빛이 진심인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


였다. 눈동자엔 힘이 가득 들어있고 꼿꼿하게 경직된 것이 흔들리지 않았다. 진심이었던 것


이다. 자신이 본 샛별의 성격부터 서서히 풀어나가기 시작하는 그들이었다.




“그래... 아무리 눈빛을 보내도 전혀 움직임이 없단 말이야... 죽겠어 아주~”


“여자로서 솔직한 답변이 듣고 싶으신 거겠죠?”




“그럼~ 당연하지...”


“사모님을 곁에서 지키는 사장님보다 잘난 게 뭐가 있죠? 물론 사람마다 보는 것이 틀리지


만 제가 만약 사모님이라면 돈 잘 벌고 잘생긴 남편을 배신하면서까지 실장님을 택하지 않


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런 사장님도 겨우겨우 사모님의 마음을 얻은걸로 알고 있고요“




맥주처럼 와인을 한가득 따라 단숨에 털어 넣은 김실장은 자신도 그것이 가장 고민이었던


다. 도린의 말대로 샛별의 환심을 사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 혼자서 앓고만 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도린씨에게 협조를 구하는 거잖아~”


“제가 득이 될 게 뭐가 있죠?”




득과실을 확실히 따지는 똑부러지는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도린은 인위적인 얼굴과 딱


맞아 떨어지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도린씨는 만약 사장을 꼬여낸다고 하면 최후는 결혼을 염두 해 두고 있나?”


“후훗! 결혼이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너무 멀리 가는 건 아닌가요?”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난 샛별이를 꼭 내 여자로 만들고 싶은데?”


“글쎄요... 저도 아마 최후는 사장님과의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가 아닐까요?”




“그렇지? 그럼, 만약.. 아주 만약에 내가 샛별이와 잘 되고 사장이랑 도린씨가 잘 된다면 회


사는 건드리지 않을께! 약속할 수 있어... 그저 합의 이혼으로 이끌어 보겠어...“


“후훗! 벌써 그런 것까지 생각해 놓으셨다니... 각오가 대단하신데요?”




무언의 합의인지 도린과 김실장은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다시 대화를 이끌어갔다. 


도린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려지는


청사진이 마냥 흐리지만은 않았다.




“아마.. 먼저 상대방을 꼬실 수 있는 사람은 도린씨일꺼야... 그렇게만 된다면 그 후는 내가


샛별이를 낚아채기만 하면 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여자만큼 꼬시기 쉬운 여자도 


없잖아?“


“흠~... 글쎄요... 그렇게 된다 해도 쉬운 상대는 아닐껄요? 사모님의 성격상 만약 그렇게 된


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쿨하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그런가?”


“아무튼... 알겠어요! 저한테도 나쁘지 않은 거래네요. 조금 전 하신 약속 꼭 지켜주세요!”




“그럼~”


“그래도 자신만만하신데... 뭘 믿고 그러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도린이 본 샛별은 보통의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도 어디가서는 여우라는 소리를 들고 살지


만 자신보다 더 강한 적을 주위에서 고르라면 가장 1순위로 샛별을 고를 수 있을 만큼 지


혜롭고도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여겨졌다.


그러나 김실장은 도대체 뭘 믿고 그리 자신만만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하하하... 그것보다 사장한테는 빈틈이 좀 보여? 워낙 도린씨야 예쁘고 세련됐으니 남자


하나 꼬여내기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겠지!“


“부창부수라고 했죠? 사장님 역시 빈틈이 없었어요...”




“없었다라면... 과거형인데~ 빈틈을 찾은건가?”


“그런셈이죠. 한 사람만 알고 일만 알던 남자가 지금 다른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어요. 그


건 제가 들어갈 틈도 충분히 열려 있다는 증거기도 하죠“




“그래? 누군지는 알아?”


“아뇨. 아직은 서로 풋풋한 사이인가 봐요. 살짝 떠봤는데 여자를 마음에 품고 있는 건 확


실해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좋아하는 김실장이었다. 도린의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만큼 자신에게도


커다란 기회가 생기는 것은 자명한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구만... 아무튼 같은 처지에 서로 도와보자고!”


“그래요... 그나저나 사모님을 잡아챌 수 있는 계획은 세워두신 거예요?”




그저 웃음만 짓고 있는 김실장은 빛나는 머리를 한 번 훑어내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궁금해?”


“그럼요~”




“그러는 도린씨는 뭘로 유혹을 할건데?”


“저야 뭐 가진 건 얼굴하고 몸매죠! 솔직히 마음먹고 꼬신 남자 중 안 넘어온 사람이 없었


으니까요“




“그럴만도 하군. 예쁜 얼굴하며 쫙 뻣은 팔다리가 매혹적이긴 하지... 나는 별 거 없어! 하지


만 도린씨랑 겹치는 건 있군... 바로 내 몸이지!“


“몸이요?”




“나도 내 밑에 깔렸던 여자 중에 만족하지 않은 여자들이 없었다고...하하하! 먼저 말빨로 


녹이고 정신없는 틈을 타서 한 번 눌러주면....“


“푸핫! 누르긴 뭘 눌러요... 그렇게 안 봤는데~ 밝히시네요?”




도린은 음흉한 눈빛으로 음탕한 말을 잇는 김실장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야 다리 벌


린 여자를 그냥 못 지나치지만 여자는 그렇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한 지 3년이 된 부부가 형편이 어렵지도 않고 샛별이 따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아이가 없다는 것만 봐도 섹스를 그리 즐기는 여자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풍처럼 들리기도 하겠군...”


“자만하지 마세요.. 남자들은 여자의 몸 하나에 뿅 갈수도 있지만 여자들은 왠만하지 않고


서야 그렇게 단순하게 안 넘어와요~“




“그렇다 해도 남자의 사랑을 먹고 사는 게 여자 아닌가?”


“훗! 그나저나 그 능력은 어떻게 보여줄 생각인데요? 강간이라도 하실건가요?”




“내가 그런 야만인으로 보여? 나도 그게 걱정이야... 한번만 올라타면 자신은 있는데 말이


지.. 그래서 이렇게 도린씨와 손을 잡는거잖아“


“옷 벗겨서 눕혀드리는 것 까진 자신 없어요. 저는 저 나름대로 사장님만 꼬여 낼테니 실장


님 일은 알아서 하세요~“




“물론이지... 내 외모가 이렇다고 도린씨도 여느 여자처럼 무시를 하는군!”


“무시가 아닌 동지로서 충고예요...”




“그래? 그럼 동지로써 어려운 부탁 하나만 더 해야겠군...”


“.........”




“도린씨가 쓸만한지 아닌지 평가 한 번 해주겠어?”


“제가 왜요? 싫어요”




음흄하고 능글맞은 김실장의 눈을 뿌리치며 고개를 돌린 도린은 단숨에 거절을 했다. 여운


도 남기지 않은 깔끔한 거부였다. 들어주려 마음만 먹으면 그까짓 하룻밤쯤이야 즐길수도 


있었지만 마음에 내키지 않는 그녀였다.




“그래? 그렇다면 깔끔하게 포기해야겠구만...”


“후훗! 저도 꼬시지 못하시면서 그 강적을 어떻게 녹여내시려고요?”




“그런가? 하지만 의심의 벽을 두껍게 올려버린 도린씨는 사장이 와도 허물지 못할텐데 내가


뭐하려고 여기에 힘을 빼나?“


“보통은 아니시네요! 일어나시죠!”




핸드백을 챙기며 치마를 단정히 정리한 도린은 골반을 살랑이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계산을


마치고 뒤늦게 그녀의 뒤를 쫒는 김실장은 천군만마를 얻은듯한 기분에 벌써부터 흥분이 되


기 시작했다. 


바에서 내려온 둘은 김실장의 차 앞에서 퍼붓는 빗줄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도린씨! 타.. 태워다 줄게”


“음주운전 하시게요? 쉬었다 가시죠?”




도린은 당차고 도도하게 말을 던져놓고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호텔을 향해 걸어갔다. 김실장


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 꺼내던 자동차 열쇠를 다시 주머니로 우겨넣고 빠른 걸음으로


도린을 따라잡아 나란히 호텔의 문으로 들어섰다.




“역시 도린씨는 보통이 아니야... 절대 남자에게 휘둘리는 성격이 못된다는 것 쯤은 파악했


지... 어설프게 매달리면 도망가는 스타일... 좋아 오늘은 내가 당하는 걸로 해두지!“


“실장님도 보통이 아니신데요? 다른 남자 같았으면 싫다는 말에 주눅이 들어도 한참은 들었


을텐데... 모쪼록 오늘 잘 부탁드려요~“




구차하게 구걸을 할 줄 알았던 김실장이 의외로 의연하게 나오자 갑자기 호기심이 동한 도


린이었다. 원나잇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당당한 김실장의 패기에 자신도 모르게 그의 


능력이 궁금해진 것이었다. 그렇게 둘은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호텔방을 들어섰다.








도린이 김실장과 손을 잡은 일을 문득 떠올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파트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늦은 밤인 만큼 아파트 단지도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간혹 몇 대의 차들이 들락 거릴 뿐


사람들의 그림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신식 아파트는 새것의 냄새가 풍길 만큼 깔끔해 보


이고 주차공간도 널찍이 잘 정돈되어 있다.


김실장의 대형 RV차량이 옥외주차장의 빈틈으로 단번에 들어서고 곧 도린과 김실장이 차에


서 내린다.




“도린씨 고생했어~”




준식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잠시 눈을 떴었던 김실장은 그 후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었다. 


지루한 운전이었는지 차에서 내리자마자 기지개를 크게 켜낸 도린은 곧 자세를 바로 잡는


다. 항상 올백으로 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는 자연스럽게 풀어헤쳐져 있고 민소매로 된 하얀


원피스의 가슴 부분이 볼록하게 올라와 여체의 곡선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한 잔 하고 갈래?”


“더 드실 수 있겠어요?”




도린은 술자리에서 술을 참아내느라 애를 먹었다. 그저 준석에게 잘보이기 위해 일부러 술


을 피했지만 그것은 큰 성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유독 술이 당기는 밤이었다.


물론 운전이라는 핑계를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준석이 얄밉기까지 한 도린이다.




“올라가자! 가뜩이나 샛별이를 느끼고 왔더니 아래가 묵직하구만!”


“어머! 꿩 대신 닭이라 이거예요? 그런 건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싫어요”




마음을 둔 여자를 보고 온 남자, 그 남자가 안을 여자는 대리만족을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


는 도린이 그것을 반길 리 없었다. 그렇지만 도린도 준석을 느끼고 와서인지 남자가 그리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의중을 알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었다.




“꿩 대신 닭이라니... 꿩 대신 공작이지!”


“술 있어요?”




“아마 맥주 몇 캔 있을거야~ 몸도 마음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올라가자! 튕기지 말고!!”


“후훗!! 안 그래도 튕길 마음 없어요... 저도 사장님 보고 왔더니 몸이 달아올라 죽겠어요”




김실장이 먼저 앞서고 그 뒤를 도린이 뒤따른다. 


현관의 센서가 반응을 하며 실내등이 둘을 비추고 엘리베이터도 그들의 뜨거운 밤을 암시하


듯 1층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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