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하와의 눈물 - 20부

본문

만뢰산 정상으로 솟아 오른 붉은 기운은 마을 어귀에 남아있던 어둠마저 삼켜버렸다.


여기 저기서 홰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부지런한 어느 농부의 마음은 벌써 논을 향하고 있었다.


새벽5시가 겨우 넘었을 무렵, 경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향하던 경숙은 들려오는 까마귀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아카시아 나무 위에서 커다란 까마귀 한 마리가 날개짓을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부터 왠 까마귀람..”




부엌에 들어선 경숙은 보온밥통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동동 떠오른 밥알을 건져내 찬물에 헹궈내고 식혜에 새끼 손가락을 담궈 간을 봤다.


어제 저녁 식혜가 먹고싶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경숙은 허투루 듣지 않았다.


곧 기침 하실 시어머니께 달디 단 식혜를 맛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움직였다.


독립운동을 하던 시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인지 시어머니는 항상 사리분별이 올바른 분이었다.


재준을 보내고 가족들이 슬픔에 빠져있을때도 당신의 슬픔을 숨긴채 초연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위로하던 시어머니였다.


아침식사까지 준비한 경숙이 부엌을 나서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안 일어나셨나?”




언제나 경숙보다 먼저 일어나는 시어머니가 오늘은 기침이 늦었다.


방문 앞에서 경숙이 시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님~ 일어 나셨어요?”








아침 식사를 하다 경숙의 전화를 받은 해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식사를 하던 병호와 규빈, 그리고 수연이 해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골집으로 향하는 병호 일행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 배어 있다.


뒷자석에 두 손을 맞잡은 해연과 수연의 눈에 눈물자국이 뚜렸했다.






시골집 마당에는 이미 이장과 동네어른들이 모여 재준모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경숙은 애들이 들어서자 힘없이 일어났다.


해연과 수연이 경숙에게 뛰듯이 안기며 눈물을 보였다.




“흑흑~ 엄마~ 많이 놀라셨죠?”


“흑흑~ 잠자리 드실때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분이....”


“지연이한테도 연락했어요.”




저쪽에서 이장이 병호를 불렀다.




“아흔 넷이면 호상 중에 호상이쥬~ 암유~”


“자다가 돌아가셨다니.. 평소에 베풀고 사셔서 복받으신게유~”




마당 한켠에서 동네 사람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재준모의 죽음을 확인시키고 있었다.




침울했던 분위기는 점심 무렵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활기차게 변해갔다.


오지랖 넓은 이장과 이장부인 덕분에 장례와 음식준비가 순탄하게 진행되어 갔다. 


다소 안정이된 경숙이 마을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방으로 들어섰다.


병풍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의 주검을 마주하고 있던 해연이 일어나 경숙을 부축했다.




“해야~ 이제 괜찮아.. 한서방이 고생하는구나”


“고생은요. 당연히 해야될 일인걸요”


“지랑 통화했다며?”


“네, 발인때는 볼수 있을거에요”


“그래..지도 보고 싶고 떠난 니 아빠도 보고싶구나” 




경숙이 병풍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엷은 한숨을 쉬자 해연은 마음이 짠해졌다.




“어머니, 이제 할머니도 안계시니까 서울로 돌아가시게요”


“그래야겠지..이젠 이곳을 떠날때가 되었구나”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할테니 마음쓰지 마시구요”






♡ 여행가방에 짐을 챙기던 지연은 창문밖으로 병호의 차를 발견하고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리 밖으로 나와 병호를 기다리는 지연은 마음이 착찹했다.


밤늦게 해연에게 전화를 받고 아침일찍 비행기표를 알아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병호에게 전화를 했다.




손에 봉투를 든 병호가 나와있던 지연을 보더니 손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렇군. 당신 얼굴 좋아보이니 마음이 놓이요”


“괜한일로 신경쓰게 해서 미안해요”


“그런말 하지마요, 쉽게 구했으니 부담갖지 말고..”




병호가 비행기표가 든 봉투를 지연에게 건넸다.




“고마워요~ 비비안은 잘 지내죠?”


“아~ 그렇지 않아도..언제 식사한번 하자고 그랬는데..”


“바쁘실텐데 직접 갖고 올줄은... 번거롭게 했네요”


“당신 부탁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요. 잘 다녀와요”


“네~ 그럼 살펴가세요. 갔다와서 연락드리께요”




병호의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지연은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빠졌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맡겼다.


병호와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지연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별거 기간 동안 병호의 노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지연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병호는 여전히 레오니 부부와 어울렸고 심지어는 비비안과 사귄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처럼 지연의 마음속에서 병호의 흔적은 그렇게 지워져 갔다.


결국, 3년이 되기도 전에 병호는 비비안과 동거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이혼을 요구했고, 조건을 받아들인 지연이 합의하면서 두 사람은 남이 되었다.


남이 되어 등을 보인채 발걸음을 옮기던 지연은 홀가분한 마음에 웃을수 있었다.


하지만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가 어쩜 그리 자신에게 맞아 떨어지는지 집에 돌아온 지연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었었다.




봉투를 열어 비행기 시간을 확인한 지연은 전화기를 들었다.




“엘리샤? 응.. 구했어요...곧 떠나야되요...그래요..당신이 잘 해주리라 믿어요..고마워요...다녀오께요”




이혼은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지연의 마음을 확실하게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가족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한번은 한국에 들어가야 했다.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선 지연은 좌석이 이코노미석이 아닌 비즈니스석임을 확인하고, 병호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뒤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독일남자에 의해 이내 잊혀져 버렸다.


좌석앞에 도착한 지연이 번호를 확인하려다 뒤쪽에서 밀어붙히는 힘에 앞으로 꼬꾸라졌다.




“어맛~”




신문을 읽고 있던 남자가 놀란눈으로 지연과 거대한 덩치의 독일남자를 번갈아 쳐다봤다.


독일남자가 지연과 앉아있는 남자에게 굵은 목을 굽히며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앞으로 사라졌다.


지연도 미안하다는 독일어가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Es tut mir leid”


“괜찮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시죠~”




지연은 자신의 가슴 부분이 남자의 얼굴을 누르고 있는걸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어머머~”




남자는 지연의 몸이 멀어지자 코 끝에 남아있는 향수냄새를 킁킁거리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뭐야? 비웃는거야?)




지연은 내심 기분이 나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신문이 찢어져 버렸네요. 정말 죄송해요”


“하하~ 다시 가져오면 되죠. 마음 쓰지 마십시오”




검은 뿔테 안경을 쓴 남자는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눈빛만큼은 선해 보였다.




(근데 왜 웃은거지? 이상한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10시간 동안 같이 가게 됐는데 통성명이나 하죠”


“네? 네네..뭐 그래요”


“전 우영찬이라고 합니다”


“주지연 이에요”


“상당히 미인이시네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훗~ 기분은 좋네..)




“네~ 반가워요”




지연은 영찬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양해를 구하고 일부러 잠을 청했다.




한국에 도착한 영찬은 지연에게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명함에는 <XX 건축가 우영찬> 이라고 씌어 있었다.


오늘 짧은 만남이 평생을 같이 하게 될줄은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시골집에 도착한 지연을 온 가족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간간이 한국에 들어오긴 했지만 마지막 찾은게 5년전 이고 보니 뻘쭘하니 인사를 하는 규빈을 지연은 못알아볼뻔 했다.




“뭐야? 너 규빈이야?”


“네~ 이모”


“호호호~~ 이리와 봐.. 한번 안아보자”




지연은 규빈을 힘껏 끌어안았다.


규빈은 지연의 풍만한 가슴이 뭉클 느껴지자 수연의 가슴이 떠올랐다.


얼굴은 많이 달랐지만 지연을 통해 수연이 느껴질 정도로 두 사람의 체형은 비슷했다. 


농염함이 뚝뚝 떨어지는 무르익은 지연의 몸매는 가볍게 안겼을 뿐인데도 몸에 착 감겨왔다.


수연도 중년이 되면 ‘지연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규빈은 수연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호호~ 우리 규빈이 장가 가도 되겠다. 지금 몇학년이지?”


“2학년이에요..”


“여자친구 있어?”


“하하..이모...없어요”






시골집은 동네아줌마의 말처럼 워낙에 호상이다 보니 동네잔치가 열린것처럼 밤늦게까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뒷마당에는 윷판이 벌어져 남자들의 웃음소리와 고함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병호 역시 한손에 세로로 접은 만원짜리 지폐를 여러장 끼워놓고 흥을 돋구고 있었다.


마루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는 수연에게 해연이 말을 붙였다.




“수야~ 아직 도착 안했다니?“


“응~ 자세히 설명해줬으니까.. 잘 찾아오겠지”




소식을 접한 수연의 회사동료들이 일손을 돕겠노라고 내려오는 중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차석으로 XX그룹에 입사한 수연은 회사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지~~잉~~~]




진동으로 설정해 놓은 수연의 휴대폰이 흔들렸다.


수연은 해연에게 휴대폰을 들어 보이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언니~ 어디에요?..네..네...아~ 그래요? 나가 있으께요”


“온거야?”


“응..거의 다왔데~, 언니..나 회관앞에 좀 나갔다 올게”




음식 심부름을 하던 규빈이 눈치를 채고 끼어들었다.




“이모~ 같이 가주까?”


“응? 그럼 고맙지”




집을 나서자 규빈의 팔장을 낀 수연이 귀엣말을 속삭였다.




“자기~ 힘들지?”


“아니, 괜찮아~ 몇 명이나 온데?”


“글쎄? 5명정도 올거야”


“아까 엄마가 아빠한테 얼핏 말하는거 들었는데 할머니 서울로 다시 오실건가봐”


“응.. 들었어”


“저번에 이모가 그랬잖아. 할머니 오시면 따로 나와 산다고..”


“응~ 그럴려구..지연언니도 아주 들어온데.. 잘됐지 뭐”


“근데 이모부는 왜 같이 안오신거야?”


“나도 잘 몰라. 근데 언니가 지금 많이 힘든가봐. 나중에 말해주께” 


“응..”




회관공터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 되어 있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하늘에는 무수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쏱아져 내릴듯이 반짝거렸다.


규빈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수연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아잉...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


“사랑해~”


“나두 자기 사랑해~”


“마음에만 담아두고 이야기 못했는데..고마워”


“응? 뭐가?”


“유학말이야”


“무슨 유학?” 


“나 때문에 유학 포기하고 취직한거..다 알아”


“...........”




자동차 불빛이 번쩍이며 회관쪽으로 들어서자 수연은 규빈의 팔짱을 풀었다.






대사를 치룬지 일주일이 지났다.


지연은 해연과 수연에게 병호와의 이혼을 알렸고 엄마에겐 비밀로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독일로 떠났다.


한달 후에 지연이 돌아오면 아파트를 얻기로 했고 수연이 함께 지내기로 했다.


두 딸의 설득에 경숙도 서울로 올라오기로 마음을 굳혔고 시골집도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안방은 어머님이 쓰고 우린 처제방 쓰면 된다’




병호의 말에 안방과 수연의 방은 어제 이미 바뀌어져 있었다.






“나 혼자 가도 된다니깐..”


<어허~ 이 사람..당연히 내가 가서 모셔와야지.. 어떻게 당신 혼자 보내나>




해연은 수화기를 통해 전해오는 병호의 마음 씀씀이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편 병호가 한없이 듬직하게 느껴졌다.




<퇴근하고 바로 내려가자고..내일 월차 냈으니까 거기서 자고 내일 올라오면 되지>




얼마 되지 않은 이삿짐은 포장이사를 하기로 했던지라 해연은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다.


수화기를 내려 놓는 해연은 버팀목이 되어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에 가슴 한켠이 아릿해졌다.


수연과 규빈에게 전화로 사정을 이야기 하고서야 지연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향했다.




해연의 전화를 받은 규빈은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했다.


내일까지 제출할 리포트를 미리 끝내기 위함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집에서 천천히 해도 되었을 리포트였다.




회식이 잡혀있던 수연은 해연의 전화를 받고 회식에 불참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노라고 엄살을 떨었다.


수연은 우람이 모습이 어른거려 가슴이 두근거리고 귀까지 빨갛게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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