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야설

감기 - 2부 26장

본문

감기 - 33 개미의 날개 20




그녀의 부드러운 키스와 함께 회사 근처에서 내린 나는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한 개피


의 담배를 꺼내 물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도착한 탓에 밤공기와 별반 다를 것 없


는 매서운 바람이 온 몸을 휘감으며 조금전 그녀가 남겨준 온기를 빼앗으려 했다. 회색빛 


트렌치 코트의 깃을 바짝 세워 목안으로 스며드는 한기를 내몰며 낡고 오래된 지포 라이터


로 입에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런 내 곁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가로등불이 하루


를 시작하는 도심의 거리를 비추이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는 담배 연기를 새벽 공기속에 채


워 넣으며 그녀가 남기고 간 온기를 떠올렸다. 




그 온기를 지금 있게 한, 천 만의 인구가 살아가는 이 도시속에 고목의 울창한 가지처럼 여


러 갈래로 뻗어져 존재하는 수 많은 우연들을 생각해 본다. 우연히 다친 후, 우연히 같은 병


실에서 만나게 된 여인은 어느세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두터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날 때 부터 강요되고 낙인찍힌 저주받을 그 사건도 우연이었으며, 


빠져나올 수 없는 터널속을 걸어가던 나에게 한줄기 빛을 보여 준 그녀 또한 우연이었다. 


내 삶을 그런 우연들의 연속이라 생각해 본다면, 매일 내가 꾸는 지난날의 악몽을 조금씩 


바꾸어 줄, 후회로 점철된 과거에 판도라의 마지막 진통제를 놓아주는 그녀는 내 주위 모


든 우연들의 여신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직도 내 손에 쥐어져 있는 따뜻한 느낌의 쇠붙이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정리하면서도 단 하나 남겨 놓았던, 오래전 또 다른 우연의 유물이 내 손에 있었다. 


이곳 저곳 수 많은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는 낡은 지포 라이터는 그 흔적들이 마치 시간이 


아로 세겨진 것이라는 듯이 흘러간 옛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만큼은 이 지워지지 않는


흉터들에 세겨진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하며 입에 물고 있던 담


배를 바닥에 던졌다. 유경에 의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내 몸에 지금 필요한 것은 흘러간 


옛일에 얽메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온전히 기억하는 것일테다. 




바뀐 신호등불을 확인하고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회사 건물쪽으로 건너가고 있을 때, 빠르


게 다가오던 차량이 나와 부딪히기 직전에 급정거를 하며 차체를 날렵하게 오른쪽으로 틀


어 내 몸을 피하고 제동하는데 성공했다. 




"끼이이익! " 




아무리 도심의 마천루에 가려 아침해가 다 뜨지 않은 시간이라지만, 자칫 또 한번의 사고로 


겨우 만나게 된 행복과 이별할 뻔했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얼굴이 달아오른 것을 숨기


지 않은 채 짙게 선탠이 된 뉴 몬테오를 향해 걸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확인했는지 검은색


의 차창이 내려가며 낮익은, 그 만큼 역겨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큭큭.. 어지간히 놀란 얼굴이군. "




내 제안서를 훔쳐간 놈이 내 앞에서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차 좋다고 자랑하는 겁니까? 기획실장님. " 


"애써 태연해 할 필요 없어. 뭐 하나 물어볼 게 있을 뿐이니까. "


"뭡니까? "




횡단보도에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다고 생각하는지 힐끔 힐끔 쳐다보는 다른 차량들을 의


식하지 않은 채 도로 한가운데에서 또 한 개피의 담배를 꺼내 물자 그도 대쉬보드에 올려져 


있던 담배를 꺼내 피며 서로의 눈이 마주쳐 갔다. 




"어제 재미있는 전화를 내가 받았는데 말야. "


"그 재미있는 것은 혼자 아시고 계십시요. 전 관심 없습니다. "


"김유진.. 네 작품이지? "




벌써 경영진들이 언질을 한 모양인지 대략적인 것을 파악하고 있는 그가 비릿한 웃음을 지


우지 않은 채 내게 물어왔다. 




"모르는 이름이군요. 누굽니까? 그 사람은.. "


"큭큭.. "




한동안 억지 섞인 웃음을 흘리던 그가 차창을 올리며 몇 마디의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너 제법이야. 이번엔 한방 먹었지만.. 기대해 봐. "




유경이 만들어 주고 간 소중한 온기속에 구역질 날 정도로 냄새나는 역겨움이 섞이기 시작


했다. 애초에 자신이 남의 것을 훔쳐간 것이라는고 생각하지 않는 기획실장은 자신의 것이


라 한번 생각했던 것이 손에서 떠났다는 것만 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더러운 아가리


가 날 향해 다가오고 있는 모습에 하루빨리 부서장악을 끝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 




간신히 억눌러 놓았던 감기 기운과 함께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을 삼키기 위해 탕비실에서 


유자차를 한 잔 만들어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누군가 내 등을 살짝 두들기는 것


이 느껴졌다. 또 뭐야? 하는 심정으로 뒤를 돌아보니 어제 나와 이야기를 한 김유진이 약간 


쑥스러운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왔네? 안 올 줄 알았더니. "


"참네. 일 많다고 오라면서요? 다시 갈까요? 킥킥.. "


"이왕 온 건데 일 좀 하고 가. 이거 마실래? "


"설마 드시던 건 아니죠? "


"아냐. 방금 타 온 거야. 그리고 마시던 거면 또 어때? 우리 둘 사이에.. 큭큭. "


"저 애인있거든요. "




그녀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가자 먼저 도착해 있던 미운 오리새끼 다섯이 놀란 듯 우리 둘을 


바라보다 한꺼번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언니! "


"언니! 어떻게 오셨어요? "




오리들의 반응에 그녀가 뭐라 말을 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그녀대신 오리들에게 


아주 간략하게 설명했다. 




"어제 자택을 찾아 가서, 두 손 모아 삼고초려를 한 끝에 모시고 왔습니다. 이제 어제같은 


일은 없도록 저부터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 또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다들 


업무에 충실해 주시길 바랍니다. "




오리들에게 간략하게 설명을 한 후 내 자리에 코트를 벗어 놓고 컴퓨터를 켜고 있을 때, 파


티션 넘어로 김유진이 내게 살짝 손짓을 하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업무 보고 계세요. "




내가 건내 준 종이컵을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그녀가 내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확인하자 


탕비실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왜? "


"팀장님껀요? 제가 하나 타 드릴게요. 오세요. "




이미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라 그런지 탕비실에는 우리 둘외에 다른 직원의 모습을 찾을 수


가 없었다. 탕비실 선반의 서랍을 분주히 뒤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보며, 하나의 종


이컵을 꺼내 유자차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자차 나 끓이고 있는데? " 


"아뇨. PR팀 애들이 홍차를 숨겨두는 걸 전에 본 적이 있어요. 어디 뒀더라.. 아~ " 




한참을 선반의 서랍 이곳 저곳을 뒤지던 그녀가 마침내 작은 탄성을 터트리며 작은 종이 상


자를 내게 던졌다. 그 상자는 겉면에 설록차라고 적혀 있었다. 




"녹차 박스에 숨겨 놓았네요. 이거 홍차 맞죠? "


"글쎄? "




녹차박스안에 들어 있는 티백을 꺼내 보자 겉면에는 영국의 홍차 제조사인 Whittard의 트레


이드 마크가 찍혀 있다. 




"어라? 이거 꽤 좋은 건데.. "


"좋은 거예요? "


"응. 아주 고가는 아닌데 그래도 좋은 거야. "




녹차 박스에서 홍차 티백의 겉포장지를 꺼내어 보여주며 그녀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 적혀 있는 Whittard는 Jacksons과 Twinings, Harrods, F&M과 함께 영국에서 오래


된 홍차 메이커로 유명하거든. 꽤 알아줘. 애들이 그렇게 숨기고 먹을 만해. 큭큭. "


"그거 얼마 정도 해요? "


"등급이 Broken Orange Pekoe니까 중급 정도라서 티백 20개 정도에 15,000원 정도? 시


세와 환율이 적용되는 거라 해마다 가격 차이가 좀 나지만 대체로 그 정도 해. "


"고작 그거예요? 엄청 비싸네요. "


"이게 비싸다고 하면, 최상위 등급인 Special Finest Tippy급은 몇 그램당 수 만원이야. 세


상에 수 많은 차종을 두고 좋고 나쁨을 구분하는 바보짓은 하기 싫지만 홍차만큼은 좀 특별


해. 홍차 때문에 영국이 몇 번이나 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 봐. 나름의 값이지. "


"그래요? "


"응. 그래서 인도의 한 시인이 홍차를 두고 이런 말을 했어. 홍차의 붉은 색은 이것을 위해 많


은 이들이 흘린 피가 베인 거라고.. 그 정도로 홍차는 여타의 차와 달라. 뭐 요즘은 워낙 보편


화도 되고 재배국도 늘어서 다행히 가격이 싸졌지만.. "




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무시하고 녹차 박스에 숨겨져 있던 티백을 반 정도 바지


에 쑤셔 넣고, 나머지 반을 유진에게 내밀었다. 




"왜요? "


"너도 챙겨. 탕비실 잘 보고 있다가 PR팀 애들이 또 사면 그때 또 털어 먹자. 크하하하 "


"참네. 다시 출근하자 마자 도둑질이나 시켜요? "


"좋은 건 함께 나눠 먹자. 이런 거지. "


"훗.. "




새로 준비한 유자차를 유진과 느긋하게 마시고 있을 때, 조금전 출근하며 있었던 기획실장과


의 일이 떠올랐다. 당장은 그를 공격할 무기가 없지만 ,언젠가 그의 발톱 아래에서 살아 남


기 위해서는 내 기반이 되어 줄 팀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둘 필요가 있다. 특히 언제 내 등


뒤에 칼을 꽂을지 모르는 한혜진 만큼은 결코 그냥 둘 수가 없었다. 한혜진을 노리기 위한 


함정을 대략적인 계획으로 정리한 후, 유자차를 마시며 아직도 내 도둑질에 짖궂은 표정을 


짓고 있는 김유진을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조만간 팀웍을 위해 우리 부서만 회식을 할까 하는데.. 도와줄래? "


"제가요? 회식에서 도와주고 말고 할게 어디 있나요? 설마 팀장님이 술시중을 시킬 것도 아


니고요. "


"내가 그딴 더러운 걸 너한테 시킬 인간이야? "


"모르죠. 팀장님 화내는 거 보니까 꽤 성깔있던데.. 킥킥.. "


"지금 먹는 거 뱉어! "


"저 봐. 먹는 거 다시 뺏는 것 만큼 치졸한 것도 없는 거 아시죠? "




어제 만나 이야기를 한 뒤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벌써 수 년을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능글 


능글해지고 있는 그녀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그녀의 


눈동자는 웃고 있던 모습속에 긴장이 서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너 왜 긴장하는 거야? 라는 


질문을 애써 참은 채 머릿속의 말을 먼저 꺼내었다. 




"회식에서 레드썬을 할까 하는데 말야. 넌 한 번 해봤잖아. 도와줘. "


"켁켁.. "




기분좋게 유자차를 마시다가 얼굴을 급하게 붉힌 채 한참 기침을 하던 그녀가 눈가에 모인 


눈물을 정리한 후 어이없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웃다가 죽을 뻔 했잖아요! 그 시이비 짓을 또 할 거란 말이예요? "


"왜 안 좋았어? 너도 재미있어 했잖아? "


"참네. 오빠가요... "


"오빠가 뭐? "


"팀장님 그러시는 거 보고 개그맨 공채 준비하는 줄 알았데요. 갑자기 일어나서 온갖 폼 다 


잡다가 레드썬! 이라니.. 킥킥.. "




웃고 있는 그녀를 지나쳐 탕비실 한 쪽에 마련된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밖에는 이제 도심


을 밝히기 시작한 오전 햇살이 따뜻한 색을 머금은 채 도로를 내려 쬐고 있었다. 몇 모금의 


유자차를 마신 후 창밖을 응시한 채 그녀에게 말했다. 




"넌 아마 모를 건데.. 경영진은 우리 팀을 해체할려고 계획하고 있어. "


"예? 정말요? 그럼 우리는요? "


"지금까지 지원팀을 떠난 과장이 나 빼고, 다섯이라며? "


"예. 뭐 그렇죠.. "


"외부에서 내가 들어온 걸 한번이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


"그냥 더이상 사내에서 보낼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요. 세상에.. "




몸을 돌려 그녀를 응시하며 조금전 끊겼던 말을 이었다. 




"경영진을 탓하기 전에 니들 스스로도 잘못이 있어. 회사는 친한 직원들이 모여서 결성된 


친목단체가 아냐. 이익실현을 위해 모인 이익집단이고, 우리는 수익을 창출해서 주주들을 


만족시켜 줄 의무가 있는 대리인들이야. 그래서 회사의 한 부서에서 실적을 내지 못 한다면 


경영진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어. "


"그게 뭐죠? "


"내가 전에 있었던 광고쪽에선 이런 용어를 써. 정면돌파와 회피. "


"정면 돌파와 회피요? "




"세상에 그것도 모르다니!"라는 표정을 지으려는 찰라, 그녀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먼저 내 


눈에 잡혀 왔다. 날이 선 채 째려보는 그녀의 고양이 눈빛을 피해서 창비실 창가에 설치된 


작은 환풍기를 켠 후 그녀를 다시 돌아 보았다. 




"너 뒤에 문 좀 잠궈 봐. "


"예? 왜요! "


"휴.. 같이 담배 피자고. 설마 문 활짝 열어 놓고, 우리 여기서 담배펴요~ 하고 광고할래? 다


른 애들 오기전에 문이나 어서 잠궈. 그리고 나 곧 결혼한다니까! "


"결혼해도 남자들 할 짓, 못할 짓 다 하던데요. "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




문 잠그라는 내 말에 무슨 상상을 했는지 발끈했던 그녀가 탕비실 싱크대에 유자차를 올려 


놓고 문을 잠근 후 조금전까지 자신이 기대고 있던 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뭐 사내에선 그런 소문은 빠르니까요. 특히 여직원들끼린 공유되는 게 많은 편이구요. "




그 말에 그녀를 백조로 만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며, 주머니에서 한 개피의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내 모습에 그녀도 환풍기 근처에 기대에 있는 내 옆에 가까이 와


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문다. 낡은 지포 라이터를 꺼내 그녀의 담배에 먼저 불을 붙여 준 후 


내가 물고 있는 담배에도 불을 당긴다. 




"꽤 오래된 거네요. 그 라이터.. " 




그녀의 관심에 양손의 손가락 두개씩 마주 대었다가 떼며 뒤집은 후 몇 가지 동작을 이어서 


반복했다. 그런 내 수화에 약간 놀란 듯 한 표정을 지은 그녀 또한 몇 가지 수화로 내 무언


의 말에 무언으로 물어 왔다. 수화의 대화가 이어주는 정적속에서 한동안 말이 없던 그녀가 


환풍기쪽으로 담배 연기를 가늘게 내뿜은 후 내 얼굴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그 선물 준 분.. 지금 뭐하세요? "


"고아원 보모. 무척 힘든 일이야. 말리고 싶을 만큼.. "


"안 보고 싶으세요? "




안 보고 싶을리가 없다. 특히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문득 문득 커져갈 


때가 있었다.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눈덩이처럼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 몸집을 불리는 그


리움이 사무쳐서 그녀가 있는 곳에 가볼까 생각을 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매일 밤의 악몽을 작은 가슴으로 안아 준 사람이었기에 그녀에 대한 감정은 유경과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다. 모든 것을 처음 함께 나눈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때 


복잡한 내 표정을 바라보던 그녀가 내 얼굴에서 시선을 돌리며 나지막히 말해왔다. 




"미안해요.. "


"아냐. 어제도 말했잖아. 난 너와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


"고마워요. "




지웠다고 늘 착각하고 있는, 아니 스스로 최면을 걸어 잊었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기억이 잠


시 수면위로 떠올랐다가 짙은 담배 연기가 공기속에 뒤섞여 사라지 듯이 희미해져 갔다. 애


써 얼굴을 정리한 후 내 표정을 살피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만 이야기 하고, 조금전 이야기를 마저 하자. "


"그래요! "




내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힘차게 대답하는 그녀는 내 다음 말을 제촉하는 듯 


담배를 들고 있는 손을 흔들고 있다. 이 여자가 점점 철딱서니 없는 내 여동생을 닮아가는 


것 같아 불안해진다. 그녀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조금전에 끊겼던 말을 이었다. 




"경영진이 생각하고 있는 정면돌파는 아마도 지금까지 해왔던 신임과장들을 연속적으로 보


내는 것을 들 수 있을 거야. 광고쪽에서는 광고를 수주한 후 제작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각


종 문제를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며 해결하는 걸 정공법이라고 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한데 시간과 정력이 엄청나게 소모되는 일이지. 충분한 기간과 자금이 주어질 때나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고. "


"그럼 회피는요? "


"말 그대로 돌출된 문제를 처음부터 멀찍히 도망가서 최종목표로 바로 진입하는 걸 말하는 


거야. 시간과 자금이 충분하지 않을 때나, 아니면 정공법을 시도해도 승산이 거의 없는 난


공불락의 문제을 갑자기 맞닥뜨렸을 경우에 회피전술을 선택하게 되지. 하지만 회피전술은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 있어. "


"그게 뭔데요? "




탕비실에서 때 아닌 수업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었지만,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 깃


든 열기에 나 또한 나름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회피는 별다른 노력이 안 드니까 쉽게 시도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지만, 회피를 해도 그 문


제가 완전히 해결된 상태가 아니라서, 추후에 그 문제가 언제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위험을 


항시 떠안게 되는 게 가장 큰 함정이야. 특히 이미 진행되어 가고 있는 과정의 배후에서 문제


가 불거진다면 그땐 아주 치명적이게 돼. 그래서 이때는 한가지 방법을 더 써. "


"어떤 거죠? 팀장님. "


"위험요**고 생각된 것을 아예 파괴해 버리는 거야. 돌파고, 회피고 어렵게 고민할 필요


없이 아예 지워버리면 뒷처리가 깔끔하거든. 지금 경영진이 생각하고 있는 것 처럼. "




잠시 말을 끊고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갑을 찾기 시작했다. 




"이 방법은 자주 사용하게 되면 지휘부의 능력을 의심받게 되니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


다는 단점이 존재해. 하지만 경영진은 그런 것도 각오하고 지금의 디자인지원팀이라는 위


험요소가 향후 사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해체할 결심을 


굳힌 후 실행시기만 고려하고 있는 거야. "




내 말에 긴장한 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또 한 개피의 담배를 꺼내 물며 말해 왔다. 방금 주


머니에서 꺼낸 담배갑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지포 라이터로 그녀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준 후, 


나 또한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싱트대에 던져 놓고 새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 생각.. 팀장님 혼잣만의 생각인가요? 아니면.. "


"홍보부장님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 내가 지원팀에 보내는 마지


막 과장이라고. 그말 뜻이 뭔지 이제 너도 알겠지? "




한동안 무언가 생각하던 그녀가 스스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거군요. "


"뭐가? "


"우리 팀에 단 한 명의 대리도 없는 거요. 진급대상자가 된 사람이 저 말고도 꽤 있는데.. "


"니들은 지금까지 옷벗고 나간 과장들만 경영진의 눈밖에 났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


데, 애초에 눈밖에 난 존재들은 바로 너희들이었던 거야. 언제부턴지는 난 잘 모르지만.. "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이대로 있는다고 해도 얼마 후에 팀이 없어지고 진급 안 되면 결국 


옷 벗으라는 소리잖아요. "




이제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통하게 된 그녀를 바라보며 입에만 물고 있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의 연기를 폐속깊이 빨아 당겨 마셨다가 길게 내뿜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널 믿는다고 했지? "


"예. 저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구요. "


"회식때 레드썬을 너와 나 둘이서 하자. "


"도대체 그거와 지금 이 문제가 무슨 상관이 있어요? "


"중요해.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절대 팀안에서 꺼내지 마. 그럴 자신있어? "




내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긴장하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한 차례 두들겨 준 후 말을 


이었다. 




"첫 번째 내 목표는 우리 팀의 정상업무 실적을 확실히 만드는 거야. 경영진에게 보여줄 가


시적인 성과가 일단은 필요해. 하지만 이걸로는 인내심의 막바지에 이른 경영진의 결정을 


번복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아. 한 가지가 더 필요해. "


"말씀하세요. "


"두 번째는 내가 팀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믿음을 보여 줄 필요가 있어. 그래야 그들이 


우리 팀을 존속시키기로 결정할 수 있을 테니까. "


"그건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 거죠? "


"한혜진을 팀에서 찍어낸다. "


"예!? "




지금까지 그녀를 보아왔던 표정중에 가장 놀랄만한 얼굴을 한 그녀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


를 떨어트린 채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조와 하이에나가 함께 준비하는 올무라면 한


혜진을 확실히 잡고도 남는다. 결코 도망가지 못 하는 날카로운 철사로 그녀의 몸과 목을 


칭칭감아 산 채로 잡아 버릴테다. 그리고 난 새하얀 어린 양의 목을 베어 제단에 붉은 피를 


뿌린 제사장이 되어 언젠가 버릴 사석으로 이용할려는 경영진과 샤일록보다 못한 기획실


장을 향한 저주스런 제사를 지낼 것이다. 척박한 사바나에서 살아 남은 하이에나가 얼마나 


끈질긴 생명체인지 그들에게 증명할 첫번째 단추가 이제 막 채워지고 있었다. 










감기 34편 개미의 날개 21 에피소드에서 계속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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