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험담

내가 "동방불패"를 보는 이유 ... - 1부

본문

한 여자를 완전히 잊는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어찌보면 잠시 스쳐지나간 사람일 뿐인데도 말이다.


그녀와 함께 봤던 영화를 볼 때마다, 그녀가 잘 입던 짧은 청반바지를 입은 여자를 볼때마다, 그녀가 살던 아파트 옆을 지날 때마다 아주 잠시지만 그 추억은 현재가 된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아낀다던 그녀의 작은 아들을 닮은 어린 남자아이를 볼 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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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날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직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집과 서울을 떠나 대전이라는 나에게는 낯선 도시에서 나름대로 적응해보려 애쓰던 그 어느 날이었다고만 기억한다.


낯설다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그리고 외로움은 외로운 사람으로 하여금 세가지를 찾게 한다. 외로움을 덜어줄 사람, 그 사람과의 대화, 그리고 어떠한 것이든 삶에 있어서의 변화..


그때가 바로 나에게는 그런 때였던 것 같다.




몇 년간 손도 안대던 채팅이란 것을 다시 시작했다. 


새로 시작한 채팅방은 그간 참 새로운 세상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한참 채팅에 빠져있던 90년대 초중반 PC통신에서 채팅하던 때만해도 10대와 20대 외에 그 이상의 연령대는 보기 힘들었고, 대놓고 음란대화방을 만드는 일도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어쨌든 공허하고 외로운 사람에게 새로움이란 일단 무조건 괜찮은 법이다. 나보다 나이가 위인 주부들과 애인인 듯 밀어를 속삭이는 것도 재미있었고, 컴섹이란 것은 실제 섹스보다도 짜릿한 뭔가가 있었다.


한동안 나는 채팅에 꽤나 빠져들었다. 




하지만 채팅을 통해 번개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런건 이미 소시적에 할만큼 해봤고, 그래봐야 별거 없다는거, 더 이상 기대하거나 길게 가져가봐야 좋을 것 없다는건 알만큼 아는 터였다.


간혹 그렇게 사이버상에서 만난 서로를 어느 정도 보여주고 어느 정도를 감추면서, 때로는 그 순간만은 진심인듯 싶은 사랑의 단어의 나열을 통해 마음의 빈칸을 잠시 채우고, 때로는 농담따먹기로 밤을 지새우며, 때로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진실한 친구인 듯 마음 속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컴섹을 통해 순간의 짜릿함을 맛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채팅에는 진실은 없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차라리 채팅 속에서 서로의 외로움과 욕망, 이기심에 충실하다면 그것이 채팅에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그날도 그런 초여름밤의 어느날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서 혼자 사는 원룸에 가봐야 낙이 없던 나는 그날도 그냥 버릇처럼 채팅을 시작하고 있었다.


방제는 “아직도 남편 안들어오신 주부님 오세요~” 였던가?


푸훗~ 웃기지 않는가? 나이가 거의 30 가까이된 녀석이 넥타이 매고 앉아 사무실에서 하는 짓치고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 방제는 그런대로 잘 먹히는 방제였다.


적어도 적당한 대화와 컴섹으로 이어가기는 말이다. 


사실 어느 정도 채팅한 사람들이라면 다 알아들을만한 방제가 아닌가.




잠시 기다리고 있자 언제나처럼 한 여자가 들어왔다.




레드머신 : 하이여


레드머신 : 방가임다 ^^




그러나 상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레드머신 : 쿠쿠, 하나도 안방가우신가봐요? 전 방가운데.. ^^




조금 시간이 걸려서 간신히 첫마디가 나왔다.




심연의산호 : 안녕하세요




타자속도와 첫인사를 보면 대강 견적이 나오는 법이다. 


틀림없이 생초보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잠시 후면 뜬금없는 질문을 할지도 모른다.




“남편 출장 중이데요, 왜 남편 퇴근 안한 사람만 찾으세요?”




농담같다구? 실제로 이런 반문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이런 반문을 받게 되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처음에는 꽤나 난감했다.


어쨌든 다행히 그 날 그런 반문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후 역시 조금 느린듯한 타자로 또 한마디가 올라왔다.




심연의산호 : 제가 오늘 처음 채팅하는거라 타자가 느려요


레드머신 : 괜찮아요, 부담갖지 말고 천천히 하세요.


레드머신 : 그리고 처음치고는 굉장히 빠르신데요 뭐 ^^




대신 내가 마음을 조금 바꿔먹어야할 듯 했다.


저 타자속도와 채팅경력으로 볼 때, 컴섹은 택도 없는 일일 것이다.


차라리 서로 사는 이야기나 나누는 편이 훨씬 낫다. 




사실 주부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꼭 성적인 것이 아니더라고 꽤 재미있는 일이다.


나와 전혀 다른 생활, 전혀 다른 관심분야, 다른 고민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건 확실히 흥미있는 일이다.


특히 아직 미혼인 나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상당히 새롭고 흥미로운 것이다.




여자들의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냐고? 뭐하러 그런데 시간을 보내냐고?


물론 내가 다른 남자들과 조금 다른 편인지는 모르겠다. 원래가 이런저런 대화를 편하게 나누는 걸 그 자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심리학과를 나오고 직장에서도 상담일을 하고 있는지도..


아무튼 그렇게 말하는 남자분들은, 특히 기혼자 분들은 하나만은 좀 아실 필요가 있다.


여자들이 얼마나 그런 대화와 관심에 목말라하고 있고, 그러한 작은 대화와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에게 얼마나 쉽게 마음을 여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당신은 아내의 말을 20분 이상 찬찬히 들어주며, 공감을 나눈지 얼마나 되는가?


물론 그것은 당신이 새로산 자동차에 광택코팅을 하는게 좋을지라든가, 어제 축구에서 마지막 골이 업사이드였는지 아닌지 따위의 대화와는 조금 다른 것이어야한다.


그녀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어떤 딱딱한 논평이나 면박없이 그저 그 말 그대로 공감하며 그녀의 얼굴을 봐주는 그런 대화말이다. 




세상에 자기 마누라와 그런걸 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물론 대부분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주부들이 채팅에 들어와서 그런 대화를 나눌 상대를 찾는다.


어떻게 아냐구? 그녀들이 채팅에 들어와서 그렇게 말한다. 


난 남편과의 대화가 모자란 아내가 채팅을 즐긴다면 조심하게는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난 결혼해서 마누라가 채팅하는 것과 자식놈이 오토바이 타는 것만은 절대 못하게할 생각이다.




쓸데없는 곁가지가 길어졌는데, 하여간 분명한 것은 이런 외로움와 대화로 모자란 여자들은 자신을 보여주는데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여자들이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보아도 좋다.




두어시간도 안되는 동안에 나는 그녀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보다 3살 위인 32살이며, 4살과 2살의 아들이 둘 있고, 외국계회사 엔지니어인 남편은 지금 3개월짜리 해외출장 중으로 다음달에 돌아온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는 그녀는 임신을 위해 수술을 받는 등 꽤 많은 고생을 했으며, 정확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남편에 대한 신뢰의 상당 부분을 잃게 되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조금은 느린 타자솜씨였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늘어놓았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약간은 성가시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사실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공감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푼다지만, 남자는 그 반대에 가깝지 않은가? 내가 아무리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훈련을 받은 그 분야 전문가라지만, 그것이 즐겁기만 한 일일 수만은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근무시간도 끝나 긴장을 풀고 조금 쉬고 싶은 시간이라면 더욱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 그녀에 대한 관심과 공감, 동정심도 함께 생겨났고, 그것이 성가심보다는 더 컸다. 특히 그녀의 외로움은 꽤나 깊어 보였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 나와의 어떤 공감대를 느끼게 했다. 대화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제 지난 시간을 정리하는 의미가 개인적으로는 있는 글입니다.


또 예전에 연재를 시작하다가 제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해 접었던 글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제게는 꼭 돌아봐야할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기에, 


또 그때 약속드렸던 연재를 (기억하시는 분은 많지 않으실지라도) 약속드렸던걸 중단했던 글이기에


반드시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와 흐름을 나름대로 담으려다보니 처음부터 자지, 보지해가면서 쑤시는 것과는 흐름이 조금 다르게 되네요.


물론 이 글 외에 다른 글을 통해서는 그런 흐름의 글도 올리게 되겠지만, 이번 글만은 조금 다르게 될 듯 합니다. 


또 제 개인적인 취향이 행위 자체보다, 그 행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도 그런 이유가 될 듯 합니다.


아무튼 부족한 글 읽어주고 계신 분들께 자그마한 설명이라도 드리는게 옳을 듯 싶어 사족을 달아봤습니다. 




아,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저와 상대방의 대화명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혹여 엄한 분께 누를 드리는 일은 없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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